사도행전 강해 35) 빌립과 이디오피아 여왕의 내시
성경본문: 사도행전 8:26~40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설교: 빌립과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수없이 만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만나기를 바래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영국에 홀로 공부할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는 다니지만, 생활적인 면에서, 어디에 가게가 있는지, 어떻게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지, 등등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떻합니까? 아는 사람도, 한국 사람도 잘 모르는데 말입니다. 겨울에 도착한 저는 매서운 바람과 눈 속을 어느 날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누가 정확한 한국말로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장 성진? 너 장성진 아니니?”
쳐다보니, 7년전에 함께 다녔던 대학교 동기가 에딘버러 길거리 한복판에서 제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거리에서 영어나 스코틀랜드 사투리만 들릴 뿐, 한국말이 들린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찌나 황당하고 기쁘던지요. 그 친구는 이미 일 년전부터 에딘버러에 와서 일하고 공부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국에서 생활하는 초창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희한하지 않습니까? 7년 전 그 친구랑 그저 알고지냈고, 또 졸업할 때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국 땅이 아닌, 영국 에딘버러 어느 중심가 골목에서 만나다니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인연은 참으로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도저히 인연으로라도 만날 일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 두 사람은 빌립이고, 또 한 사람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입니다. 말이 내시지, 국고를 맡아 관리하는 고위직 관리입니다. 세상 상식으로 생각하자면, 이 둘은 도저히 무슨 짓을 하더라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만나게 하셨고, 축복하셨습니다. 도대체 이들 안에 일어난 일이 무엇이고, 그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서 인연으로 만나게 하시는 모든 인생들을 통해 쓰임 받고 또 축복받는 귀한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6절의 말씀입니다.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모든 인생들은 꼭 한 번 이상씩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하나하나를 부르시고,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배의 자리로도 부르게 하시지만, 사명을 위해 부르시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본문의 시작은 빌립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빌립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남쪽으로 향해 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가라는 길은 “광야”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여 간 곳은 광야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핍박을 피해 어디로 갔습니까? 광야로 갔습니다. 너무나 넓고 또 사람이 살기 너무 힘든 곳이라 사람 찾기 어려운 곳입니다. 살기 위해 간 곳은 바로 쉽게 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야라는 지역입니다.
저도 이 광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버스를 타고 지나갔지만, 정말 돌과 덤불이 굴러다닐 뿐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무라고 있어봤자 못생기고 구부러진 싯딤나무나 선인장뿐입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지금 빌립이 주님의 말씀 따라 가보니, 이런 곳이더란 말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명을 받들고 가는 길이 초원이거나 강물이 흐르는 평야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주신 꿈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면, 그 꿈을 보기는커녕, 숨쉬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일들을 견뎌야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꿈들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전혀 우리가 상상치도 못하는 일들을 펼치시고, 또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빌립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황당해 하고 있을 즈음에 한 행렬이 다가옵니다.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인연을 만들어 내십니다.
29~31절의 말씀입니다.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사랑하셔서 친히 빌립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내시는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 것을 보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중심을 아시고, 빌립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워 보일지는 몰라도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우선 빌립이 성령에 순종하였다는 점이 참으로 훌륭한 것입니다. 요나서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시리아에 있는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거기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앗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철전지 원수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을 기회를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라는 니느웨는 안가고 반대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향해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고 이에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었습니다. 심지어, 이사야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한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세례를 준 다음에도 편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40절에 보면,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라고 써있습니다. 빌립은 성령이 이끄시는 데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원하지만, 가장 힘들어하는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빌립과 같이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내려주시고, 성령충만하게 하시어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힘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여서 결코 사명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의 전도를 받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는 어떤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신앙적으로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그는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권세 있는 자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예배를 드리려고 예루살렘을 찾아 왔다는 말씀합니다. 그렇게 예배를 사모하는 내시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보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예배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식적인 예배를 싫어하시고 격노하십니다(호9:4, 말1:8~10).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나타나시고 만나주십니다.
둘째로, 그는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사람입니다. 내시는 말씀의 깨달음이 없어서 답답했지만 말씀을 깨달아 지기를 바라면서 소리를 내어서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오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빛의 비춤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 집사를 자신의 수레에 태웁니다(행8:31). 그의 겸손의 성품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높이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들도 늘 겸손해야 합니다.
넷째로, 그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내시는 복음에 대한 빌립 집사의 설명을 듣고 깨달아 알게 되었고,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알았으며, 그 순간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행동에 옮겨 세례를 받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행8:36, 38). 이런 결단력 있는 신앙으로 인하여 에디오피아인으로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신앙인이 되었고, 에디오피아에도 복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런 결단력 있는 신앙을 우리들도 본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기쁨을 얻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증표인 세례를 받은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더 이상 어둠과 멸망의 권세에 놓여 있지 않고 빛과 생명의 은혜 아래 살게 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롬5:21). 그리고 새로 태어난 기쁨으로 충만한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빌립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기뻐하며 길을 갔던 것입니다(행8:39). 그리고 이 기쁨은 순간적이거나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기쁨이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볼 때 하나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일들이 인간적으로 힘듭니다. 오늘 빌립과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같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답이 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광야로 내모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누리면서 하나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서 최후 승리를 얻어 축복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빌립을 통하여 간절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던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순종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에 치이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중심잡고 살면서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 안에서 평안을 얻으며, 날마다 주와 함께 함을 기뻐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http://blog.daum.net/466910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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