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해설

로마서 3장 - 칭의의 방법

namsarang 2017. 9. 3. 09:36


 로마서 3장 - 칭의의 방법 

3장: 칭의의 방법 

전체적으로, 로마서 1, 2장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는데, 1장은 사람의 죄에 대하여, 2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한다. 3장부터 5장까지는 복음의 중심적 내용인 '의롭다 하심' 즉 칭의(稱義)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그 중에서 3장은 칭의의 방법에 대하여 말씀한다. 그러나 3:1-18에서 바울 사도는 먼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것을 한 번 더 강조한다. 


1-8절, 유대인의 특권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1, 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앞장 끝에서, 하나님께 대한 참된 내면적 경건과 율법 준행이 없이는 육신적 유대인이나 육신적 할례가 무익하다는 사실이 강조되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의 특권 혹은 장점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실로, 유대인의 특권 혹은 장점들은 많았다. 그 중의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을 통하여 온 세계 모든 족속에게 전달되었다. 시편 147:19, 20,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모세와 선지자들이 유대인이었고, 예수님 자신과 그의 사도들도 그러하였다.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누가를 제외하고는 다 유대인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의 진리들을 계시하셨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며 전달하게 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빚을 진 자들이다. 

[3, 4]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어떤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특권과 그들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말씀에 차질이 생기는가? 그럴 수 없다. 사람은 다 거짓될지라도 하나님은 참되시다. 구약 성경도 하나님의 참되심을 밝히 증거하였다. 

[5, 6]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하여 그 불의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가 공의롭지 못하고 불의하시다면, 어떻게 심판자가 되실 수 있겠는가? 공의롭지 못한 심판자는 참된 심판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일지라도, 또 그들의 부도덕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그들이 범죄하는 한 그들은 마땅히 정죄되어야 한다. 

[7, 8]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본절은 앞의 5, 6절을 보충 설명한다. 사람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드러났을지라도 그의 거짓말이 어떤 선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며 선으로 간주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목표가 선하고 옳을 뿐만 아니라, 방법도 선하고 옳아야 한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의 화평과 일치를 위하여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교단들과, 또 대형집회들을 위해 그런 교회들과 심지어 천주교회 지도자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사용하는 어떤 복음주의자들이 잘못임을 증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선한 목표를 가질 뿐 아니라, 또한 선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목표가 선하다 할지라도 비성경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9-18절, 모든 사람이 죄인임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 자신은 더 나은 자들이라는 뜻인가? 결코 그런 뜻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였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모두 다 차별 없이 죄인이다. 

[10-1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물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예외이시다. 그는 유일한 의인이시다. 그 외의 사람들 중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일치하게 사는 자, 참으로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다. 또한 깨닫는 자도 없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인간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있으며 장차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모든 사람은 인생의 정로(正路)를 알지 못함으로 이리 저리 치우쳤고 그들의 삶은 헛되고 무가치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쌓은 선한 업적이라는 것도 실상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영원히 가치 있고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13-15]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열린 무덤은 얼마나 구역질나게 나쁜 냄새를 내겠는가?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이와 같이 더럽고 악취나는 것들뿐이다. 저희 혀는 속이는 혀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숙련되어 있다. 그 입술에는 남을 죽이는 독이 있고 저희의 말은 남을 저주하는 악독으로 가득하다. 또한 저희의 발은 남을 죽이기에 재빠르다. 참으로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된 존재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6-18]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고생'은 '불행'(misery)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겠다. 죄인들의 길 앞에는 파멸과 불행이 있다. 또한 죄인들에게는 평강이 없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 이사야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또 저희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죄인들의 죄악된 삶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불경건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자들에게 의도, 선도 없고, 그런 자들에게 파멸과 불행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현실이며, 우리가 구원 받기 전의 상태이었다. 


19-31절, 칭의의 방법 

[19, 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결론적으로 사람은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율법의 역할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게 하여 온 세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게 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판정되고 정죄되므로 하나님 앞에서 아뢸 말이 없다.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기독교 복음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소식이다. 복음의 중심적 내용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에 관한 것이다. 이제까지 사도는 복음의 필요성, 즉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과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없음을 해설하였다. 이것은 복음의 대전제이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가? 

'이제는'이라는 말은 율법으로 특징지어지는 구약 시대와 대조하여 신약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율법 외에'라는 원어(코리스 노무)는 '율법과 별개로, 율법과 관계 없이'라는 뜻이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義)는 행위의 의, 즉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의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율법과 별개로 주시는 한 의가 복음 안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의이다. 

그러나 율법과 별개로 주어지는 이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 성경과 전혀 관계 없는 것이 아니고, 구약 성경에 이미 증거된 바이었다. 구약 성경은 '행하라'는 도덕법을 강조하지만, 제사들, 유월절 어린양, 성막 제도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였다. 그 은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밝히 증거될 것이었다. 

구약 성경은 메시야의 속죄 사역으로 인한 칭의(稱義)를 직접 예언하기도 했다. 이사야 53:11,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의인 것이다.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이라는 말은 전통 사본에는 '믿는 모든 자 안에 그리고 모든 자 위에 미치는'이라고 되어 있다. 신약의 의는 예수 믿는 자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의이며 예수 믿는 모든 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믿음은 참으로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23, 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원문에 의하면, 본문은 모든 믿는 사람이 차별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까닭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단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본절은 성경 중에서 가장 명쾌한 기독교 복음의 요약이다. 

믿음으로 얻는 이 의는 행위로 얻는 의와 대조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값없이 거져 얻는 의이다. 이런 의가 가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구속(救贖)을 이루셨기 때문이었다. '구속'(救贖)이란 값을 주고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 즉 죄책(罪責)과 형벌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의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25, 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앞 절의 말씀을 좀더 설명한다.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이라는 말은 '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속죄 사역을 믿는 것이고 그의 보혈을 믿는 것이다. '화목 제물'이라는 원어(힐라스테리온)는 유화 제물(宥和祭物), 즉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물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진노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누구러지셨고 가라앉으셨고 제거되셨다는 뜻이다. 그것이 속죄의 성경적 한 의미이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라는 말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심으로라는 뜻이다. 물론, 사람이 예수 믿고 난 후에 짓는 죄도 그리스도의 동일한 보혈 공로로 씻음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무조건 의롭다고 하셨으면 그러한 판단 자체가 불의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죄인들의 죄의 형벌을 담당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셨으므로, 그것은 의로운 판단이시요 의로운 행위이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칭의의 원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수 믿는 자가 받는 의(義)의 정당함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轉嫁)시키셨으므로 그들을 의롭다고 정당하게 선포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받은 이 칭의는 본성적으로 의인으로 변화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단지 법적으로 의인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법정적(法廷的) 의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 법정에서 성도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심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또한 새 생명을 받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도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성도는 법적으로 완전한 의인이지, 실제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하고 부족이 있다.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이와 같이, 성도의 의가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하기 때문에, 성도는 자신을 자랑할 것이 없다. 율법과 별개로 나타난 의, 복음 안에 나타난 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는 받는 사람 편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의이다. 왜냐하면 이 의는 사람의 행위의 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원어는 '율법의 행위와 별개이며 율법의 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인정한다'는 말은 옛날 영어성경에는 '결론을 내린다'고 번역했다. 본절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기본 원리를 다시 결론적으로 단언하였다. 

[29-31]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 진리는 할례 받은 유대인들에게나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 구원 진리는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에게나 동일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효력 있는 진리이다. 오늘날도 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약의 복음이 구약의 율법을 폐지시키는 것은 아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율법과 복음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은 그림자와 실체요 예언과 성취이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복음으로 이끄는 선생 역할을 한다. 사실,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죽음은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죽음이었고 율법의 의를 이루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소식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율법과 별개로 우리에게 주시는 의의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에 근거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 안에 그리고 모든 믿는 자 위에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 여러분은 죄와 심판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였는가?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는가?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처 : http://www.lavcsc.com/zbxe/index.php?document_srl=3315&mid=rom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