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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담배가 500년 늦게 발견됐다면

namsarang 2009. 6. 5. 19:48

[한삼희의 환경칼럼]

 만약 담배가 500년 늦게 발견됐다면

  • 한삼희 논설위원

 얼마 전 발표된 통계에서 작년 우리나라 담배 소비지출이 8조1670억원으로 2007년(7조8591억원)보다 3.9% 늘었다. 2000년엔 5조3553억원이었다.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해선 숱한 이야기가 있다. 이걸 좀 다른 각도에서 볼 수가 있다.

담배엔 4000가지 물질이 들어 있고, 그중 1200가지가 인체에 나쁘고, 발암물질로 타르 페놀 크레졸 벤조피렌 같은 20여 가지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암의 원인을 분석한 가장 포괄적인 연구는 영국의 리처드 돌, 리처드 피토 박사가 1981년 미국 암협회지에 낸 '암의 원인(The causes of cancer)'이라는 논문이다. 지금도 고전처럼 인용되는 이 논문을 보면 가장 큰 발암인자는 '식습관', 다시 말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다. 이것이 전체 발암 원인의 35%를 차지한다.

그 다음이 담배로 30%다. 그러고는 세균 감염(10%), 알코올(3%), 자외선과 라돈(3%), 환경오염(2%), 식품첨가물(1% 미만) 같은 순서다. 흔히 환경이 나빠져서 암이 는다고 하지만 순수한 환경적 인자는 다 합해도 담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소비자들은 식품에 들어가는 향신료·방부제·감미료에도 예민하지만 그런 첨가제의 발암 비중은 담배의 30분의 1도 안 된다.

  세계보건기구나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 환경보호청 같은 기관은 발암성 물질에 대해 보통 '10만명 가운데 1명의 새로운 암 환자가 발생할 확률'을 규제 기준치로 정한다. 그 물질을 평생 섭취할 때 인구 10만명 가운데 1명 이상의 암 환자가 추가적으로 발생한다면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0만명 인구 중에서 결국은 암으로 죽는 사람이 2만7000명쯤 된다. 돌&피토의 논문에 따르면 그 30%인 8100명은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려 죽는다. 담배는 암 말고도 심장질환, 폐질환, 뇌중풍, 당뇨병 같은 질환도 일으킨다. 이것들은 빼고 발암성만 따지더라도 담배의 유해성은 일반적인 유해물질 기준치의 8100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담배는
스페인의 탐험가 콜럼버스 일행이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원주민들이 피우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 후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 나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중남미에 야생하는 담배 식물들을 건조시켜 피웠을 것이다. 1492년으로부터 시곗바늘을 500년 늦춰 1992년에 어떤 탐험가가 아마존 밀림을 답사하다가 원주민들이 뭔가 말린 식물 부스러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대는 걸 봤다고 하자.

그 탐험가가 문제의 담배 식물을 문명 세계의 어느 기업에 가져가 "이게 훌륭한 기호품이 될 수 있다"며 상품화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기업 사람들이 아마존 원주민처럼 담배를 말려 피워봤더니 기분이 몽롱해지는 진정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업 사람들은 대박을 치게 됐다고 환호를 올렸다. 과연 담배가 상품으로 팔릴 수 있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담배가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지를 놓고 동물실험을 통해 검증에 들어갔을 것이다. 식약청 결론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담배는 알려진 어떤 물질보다 독한 발암력을 갖는다. 지금까지 규제 한도로 삼았던 기준치 수준의 8100배나 된다. 담배를 시중에 판다는 것은 시민에게 독가스를 삼키게 하는 것과 같다."

포스코가 새 회장 취임 이후 급진적인 금연 정책을 펴고 있다. 금연침을 시술하고, 금연 보조제를 지급하고, 금연 교실을 운영 중이다. 올 연말 이후로는 소변 검사에서 흡연 사실이 드러나면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고까지 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도, 근무 시간 아닌 때에도,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이다. 정준양 회장은 "불만 있으면 소송하라"고 했다.

포스코 같은 정책을 펴서 우리나라 흡연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복지부,
환경부 같은 기관에서 추진하는 대부분 정책의 효과를 다 합친 것보다도 국민 건강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책 선택의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금연 정책은 무리해서라도 밀어붙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