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내 고향은 함경도에요"

namsarang 2009. 7. 29. 23:36

[사목일기]

"내 고향은 함경도에요"


                                                                                                        정혁 신부(살레시오회, 돈보스꼬자립생활관 관장)

돈보스코자립생활관에는 북한에서 중국 또는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지내고 있는 새터민(북한이탈주민) 친구들이 있다. 명국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자립관 '우리집'에서 거주하며 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 조리과에 다닌다. 요즘 조리사 자격 필기시험을 보는데 벌써 5번이나 떨어졌다. 공부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열심히 한다. 학교생활도 충실히 해서 선생님에게 귀여움을 받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명국이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명국이는 함경도에서 어머니와 두 형님들과 함께 살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두 형은 군에서 복무하고 어머니와 명국이는 파지를 주워 팔아 생계를 겨우 유지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스무살까지 어머니와 힘든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넘어갈 것을 결심했다. 어머니와 함께 중국에서 3개월 정도 머물다 태국으로 건너와 수용소에서 3개월을 지낸 뒤 한국으로 오게 됐다.
 어느 날 명국이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데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고 기본 교육은 해줄텐데 어떻게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할 수 있니?"
 "신부님! 북한은 지금 너무 살기 힘들어요. 주변에는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고무풍선 같이 배가 나와 있고 굶어죽는 사람도 있어요.학교는 생각지도 못해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학생을 찾아다니지 않니?"
 "선생님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 학생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대화를 하면서 명국이 상황을 이해했다. 명국이가 말은 참 잘하는데 글을 잘 읽지 못하는 것과 읽더라도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명국이는 내년 4월에 있을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또 문제가 있는데 명국이가 한국에 들어올 때 중개인에게 도움을 받은 700만 원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350만 원은 정착금으로 지불했고 남은 돈은 빠른 시일 내에 갚아야 한다. 앞으로 명국이에겐 정말 힘든 삶이 놓여있다. 북한의 삶이 힘들었지만 어쩌면 거기보다 더 힘든 삶이 놓여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당장 수입원이 없기에 조리과정을 잘 수료해 취업한 후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 북한에 있는 두 형도 한국으로 데려오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또 한국 사회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번뇌와 고민의 시간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형들은 명국이와 어머니가 한국으로 왔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이 태어나 살고, 힘들게 했던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 새터민 친구들을 말한다.
 "신부님! 제가 비록 북한에서 내려 왔지만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 가슴이 아파요. 왜냐하면 북한은 제가 태어나고 부모님이 살았던 제 고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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