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 신부(살레시오회, 돈보스꼬자립생활관 관장)
처음 돈보스코자립생활관에 부임했을 때 다양한 업무를 파악해야 했다. 누가 이 곳에 오고, 여기서 사는 젊은이들은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는지…. 그러던 중 서울대학교 2학년인 화영이가 할 말이 있다고 시간 좀 내달라고 부탁했다. "신부님! 삶이 왜 이렇게 힘들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안보여요."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 넌 그래도 좋은 학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저도 학비와 생활비, 교통비를 벌려고 휴학하면서 나름대로 해봤지만 실패했어요." 화영이는 돈을 벌기 위해 컴퓨터로 조그마한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컴퓨터를 도난 당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그러면 신부님이 어떻게 도와줬으면 하냐?"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비를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학비만 도와주면 되겠냐? 알았다. 내가 학비는 책임지겠다. 넌 공부에 최선을 다해라. 알았지!" 하지만 난 '의지' 외에는 가진 게 없었다. 그렇다고 화영이의 희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화영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저수지에 놀러 갔다가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다. 당시 화영이는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러 들어갔고, 이를 본 아버지가 뛰어 들었지만 결국 화영이 동생과 함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됐다. 화영이는 아버지와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게 됐다는 죄책감으로 살아왔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려 입원해 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지내는 화영이가 대견스럽다. 언제부턴가 화영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로 학교가는 모습을 보고 화영이가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화영이에게 물었다. "화영아! 자전거 타는게 그렇게 좋으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니." 그런데 화영이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신부님, 교통비가 없어서 자전거를 타는 거에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 거지…. 함께 사는 친구들 상황 하나 모르고!'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때 결심한 것이 최소한 돈보스코자립생활관에서는 물질적 부족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돈보스코 자립생활관 장학후원회다. 미미하게 마음 하나로 출발한 장학후원회는 몇몇 분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다. 화영이는 후원회를 통해 올 여름 6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리고 약 10여 명 대학생이 장학후원회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꿈이 있다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결핍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없도록 장학재단을 만들어 공부에 전념하도록 돕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