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하늘 아래에 계신 우리 엄마

namsarang 2009. 7. 31. 20:58

[사목일기]

하늘 아래에 계신 우리 엄마


                                                                                                         정혁 신부(살레시오회, 돈보스꼬자립생활관 관장)

살레시오회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관에는 40여 명 친구들이 생활한다. 이들은 시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보육원에서 온 친구들이다. 대부분 직업학교에서 취득한 기계 및 조리 기술자격증으로 일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각자 나름대로 과거에 대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어느 늦은 저녁, 식당에서 함께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승진이에게 "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신부님!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하고 싶은 것보다 알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저를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특히 엄마가 누군지 정말 알고 싶어요. 이것만 알면 소원이 없겠어요."
 이 말을 듣던 재원이가 "승진아! 엄마 만나도 남는 건 없어. 오히려 너만 상처받고 힘들어져…." 난 깜짝 놀라 재원이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재원이가 하는 대답이 "신부님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엄마가 대구에 계시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찾아가 명절날 같이 지내고 왔어요. 그런데 엄마는 새로운 가정이 생겨 명절에 찾아가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또 엄마가 저를 부담스러워해서 그 이후로 찾아가지 않았죠."
 그 말을 듣던 (올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명호가 고민을 털어 놨다. 명호는 목포의 아동보호시설에 동생과 함께 입소해 중ㆍ고등학교, 전문대를 졸업했다. 살아오면서 항상 가지고 있던 생각은 엄마가 어디에 계신지 찾는 것이었다.
 졸업 후 직장에서 일을 하며 수소문한 끝에 엄마가 어디에 계신지 알았지만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엄마를 만나는 것은 좋은데 자기가 나타나 행복하게 사는 엄마의 가정에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단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명확한 결정을 내릴 수 없어 엄마를 만나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결심했다. 동생도 형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한다.
 명호는 내게 "신부님, 이 상황에 저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결정을 잘했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이 말을 듣고 어떤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하늘이 맺어준 천륜을 어떻게 인간이 떼어놓을 수 있고, 또 부모가 어떤 이유로 자식과 헤어졌다해도…. 자식이 부모를 특히 엄마를 원망하겠는가.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가슴 속 깊이 박혀 있는 이들이 자립생활관에 사는 우리 친구들일 것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너희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가정을 갖고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 마음을 알 때 그때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명확한 답변은 아니겠지만 우리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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