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아버지의 유골을 가슴에 안은 아이

namsarang 2009. 8. 2. 15:25

[사목일기]

아버지의 유골을 가슴에 안은 아이


                                                                                                          정혁 신부(살레시오회, 돈보스꼬자립생활관 관장)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초ㆍ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살던 때였다. 이 중에는 특히 초등학교 1~3학년 꼬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세심하게 돌봐주는 일이 많았다. 학교갈 때 과제물은 가지고 가는지…. 숙제는 다 했는지, 또 시간표 대로 책은 챙겨 가는지, 정말로 아침에는 전쟁을 한 판 치러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생을 둔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어느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나름대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즐겁게 식사를 준비했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가운데 밥을 푸려고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아뿔사! 이것은 죽인지 밥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 밥물을 잘못 맞췄구나'. 옆에서 지켜보던 초등학교 3학년인 동인이가 "신부님! 어떻게 밥도 못해요?"라는 말을 하자 눈 앞에 별이 보였다. 초등학생 앞에서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아직도 밥을 할 때면 이 일이 생각나 밥 짓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수모 아닌 작은 수모를 당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등교하는 길은 너무 재미있다. 내 손을 잡으려고 싸우는 아이들 때문에 조금은 창피스럽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경한이라는 아이가 있다. 경한이는 어머니를 잘 모르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아이다. 불행하게도 경한이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인 상태여서 깨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말수가 적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상담을 받아 보니 '소아우울증'이라고 한다. 경한이에게 "아버지 보고 싶냐?"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인다. 미루지 말고 아버지를 만나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의사가 아버지의 상태가 너무 흉측해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늦출 수 없어 "책임을 지고 충격을 덜 받게 준비를 잘 시키겠다"며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냈다. 중환자실 앞에서 경한이에게 "정말 충격 안 받을 자신 있냐?"고 물었더니 "신부님,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심이 됐다.
 경한이는 혼수상태에 있는 아버지를 조용히 바라보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뭔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면회를 마친 후 경한이는 "제가 아빠 손을 잡을 때 아빠가 저를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눈을 깜박이던데요?"라고 했다. 경한이 눈에 아버지가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3주 후 아버지가 운명했고, 경한이가 그 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다.
 벽제 화장터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걸어가는 초등학교 1학년인 경한이 모습이 떠오를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장례를 마치고 경한이가 내 손을 잡아끌면서 하던 말이 기억난다. "신부님! 근데, 아버지의 뼛가루가 따뜻해요. 신부님 손처럼요."
 "그래, 이 신부님이 경한이의 아버지다"라고 답해주니 경한이는 "밥도 못하는 신부 아버지요?"하며 한바탕 웃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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