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5분 콘서트

namsarang 2009. 8. 4. 20:56

[사목일기]

5분 콘서트


                                                                                                               구병진 신부(마산교구 양덕동주교좌본당 주임)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지난 두 달간 숱한 화제를 뿌리면서 높은 시청률로 사랑과 인기를 누리다가 얼마 전 종영됐다. 피나는 노력과 열정으로 당당한 위치에 오른 실력 지상주의자인 한 지휘자가 오합지졸(烏合之卒) 연주자들의 안이한 자세를 뜯어고치려고 독설과 모멸감, 폭언과 무례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들 스스로가 피와 땀을 흘리며 실력을 쌓도록 몰아세워, 결국 그들의 연주실력 뿐 아니라 꿈을 향해 열정을 쏟아내는 자의 자신감과 행복을 맛보게 함으로써 한 단계 더 높은 삶의 경지로 올려놓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그저 적당히 그럭저럭 안주하며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모든 시골 본당들이 다 비슷한 처지라고 여겨지는데, 우리 본당도 성가대를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 명색이 주교좌성당인데도 성가대원 수가 25명을 넘지 못한다. 게다가 남자단원들은 그 수가 더 모자라 6~7명을 넘지 않으니, 평소에는 물론 성탄이나 부활대축일에 주교님을 모시고 장엄한 미사 분위기를 내기가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사실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노래 부르는 소질도 있어야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함께 연습할 시간을 내야 하고, 미사시간 전에 남보다 먼저 성당에 와 있어야 하고, 옷을 한꺼풀 벗어도 시원치 않을 삼복더위에도 에어컨 효과를 반감시키는 '성가대 유니폼'을 입고 있어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가대 사기진작(士氣振作)과 본당 교우들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는데 묘안이 없어 애를 태우던 차에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교중미사 직전(10시 20분)에 '5분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월 둘째 주일 교중미사 직전에 열기로 작정하고 성가대 단장과 지휘자를 설득해 첫 발표회를 지난해 봄에 열었다.
 2주 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지만 '5분 콘서트'를 시작하는 당일 오전 10시 20분, 새 단복으로 단장하고 교우들의 열띤 호응을 기대하며 한 달 내내 준비했던 성가대 앞에는 겨우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앞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분들은 사실 '5분 콘서트'와는 상관없이 매번 그렇게 일찍 자리를 잡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성가대 솜씨는 흠 잡을 데 없는 명품이었지만 청중이 적은 것이 마음이 걸렸고, 성가대에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첫 무대에 나섰던 지휘자와 성가대 단장은 오히려 '신부님,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하며 나를 위로했다.
 '5분 콘서트'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교우들의 호응이 내 눈에는 별로다. 제발 이날만이라도 10시 15분에는 '만원사례'는 아닐망정 적어도 성가대에 기와 힘을 실어주는 '5천원 사례'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교우들에게 주입할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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