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진 신부(마산교구 양덕동 주교좌본당 주임)
우리 성당에 허리가 구부정해서 컨디션이 좋을 때는 천천히 걸어오시기도 하지만 가끔은 유모차를 밀고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워낙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이라 며칠 안 보이면 혹시 편찮으신 게 아닌가 걱정도 되는데, 반갑게도 오랜만에 다시 성당에 나타나셔서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었는지 여쭤보면 '서울 사는 아들네 집에 다니러 갔다 왔다'고 하시면서 내 인사를 은근히 즐기시는 할머니다. 가끔은 사제관에 들러 자신은 아는 게 없고 배운 게 없어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맥주 한 병과 안주거리로 오징어포를 들고 오셔서 신부님을 위해 뭔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함을 잘 이해해달라고 하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어느날 이번에도 예전처럼 맥주 한 병과 안주거리를 들고 사제관을 찾아오셨는데, 그분 표정은 뭔가 심각한 내용이 있는 듯이 보여 할머니의 어눌한 말씀에 귀를 쫑긋 세워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뜸을 들이고 난 다음 말씀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당신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옆집에 사는 이웃 아줌마가 용하다는 철학관에서 얻어온 부적(符籍)을 허리춤에 붙이고 다니는데, 본당신부가 이를 인정하고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그 부적을 한 번 보여 달라고 하자 허리춤에서 이상야릇한 부적 하나를 꺼내 슬쩍 보여주고선 다시 깊숙이 감추는 것이었다. 타이르듯 '할머니, 그것은 미신이라 우리 천주교 신자가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 '아, 그런가?'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그 부적을 포기하려니 생각했는데, 그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이것은 내 건강을 위한 것인데, 뭐가 미신이냐?'면서 '나는 성당을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 이런 것은 나한테는 미신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내가 필요해서 품고 다니는 것이고, 나는 내 건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걸 해야겠으니 신부님은 그리 알고 계시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할머니,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하느님께 기도해서 병이 낫도록 해야지, 어찌 그런 부적을 몸에 지니고 미신행위를 해가면서 성당에 다니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고 엄한 표정을 지으며 거의 협박조로 말씀을 드렸으나 그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하시는 것이었다. '이 부적이 나한테는 괜찮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돼! 내가 성당에 안 다닐까봐, 하느님 안 믿을까봐 그러냐? 나는 성당에 열심히 다닐 테니 걱정일랑 하지마!'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부적을 내놓으시라고, 그런 미신행위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렸으나 결국 그 할머니는 그 부적을 내놓지 않고 품에 간직한 채 사제관을 나서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