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진 신부(마산교구 양덕동주교좌본당 주임)
15년 전쯤 일이다. 어느 본당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남자 교우들이 반모임에 잘 모이지 않아 남자들만의 '구역 형제회'를 조직하고 그 첫 모임에 가봤다. 그런대로 10여 명이 모여 첫 모임치고는 성공이었다. 얼마 전 갓 영세한 요아킴이라는 새 교우가 보이지 않아 그 댁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집사람이 대전으로 '꿀을 뜨러' 가서 집에 아이들만 있는데 집을 비울 수가 없어 죄송하지만 오늘은 부득이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마산에서 대전으로 '꿀을 뜨러' 간 것이 아니라 본당 교우들과 함께 대전에서 열린 '전국 꾸르실리스타 울뜨레아'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이가 없어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 그 본당에서는 우스개로 지금도 울뜨레아 대신 '꿀뜨레아'라고 부르고 있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교회 주변에는 너무나도 생소한 외래어들이 많다. 새 영세자들과 연로하신 교우들이 큰 불편과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당연한 듯 수십 년을 써오고 있어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쓰는 외래어들을 한 번 나열해 본다. 새 교우들에게 "레지오를 꼭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예? '레지오'를요? 아니, 라디오도 아니고 래디오도 아니고 '레지오'를 하라구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냥 "'마리아 군대'에 들어오시지요!"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레지오'라고 해야만 하는가 말이다. 쁘레시디움, 꾸리아, 아치에스, 알로꾸시오, 꾸르실료, 울뜨레아, 롤료, 빨랑까, 네오 까떼꾸메나또, 몬시뇰 등등 참으로 많은 외래어들이 있다. 갓 영세한 새 교우들에게, 연세드신 어르신들에게 이질감과 소외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니, 무슨 큰 장벽을 쌓아놓고 그곳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일으킨다. 발음하기도, 따라 부르기도 어려운 이런 외래어들을 그토록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아해하며 섭섭해하고 있음을 우리 교회는 잘 깨닫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쉽고도 정겨운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겠는가. 우리 교회에 이런 문제를 다루는 '외래어 우리말로 고치기 전문위원회'는 없는가? 아직 이런 위원회가 없다면 어서 빨리 하나쯤 만들었으면 좋겠고, 이미 그런 위원회가 있다면 좀 더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겠는지 답답한 마음을 토로해 본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표현들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본당회장님께서 '빨랑까'를 (해)주셨습니다!", "이 미사 후에 강당에서 '울뜨레아'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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