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국조오례서례’의‘병기도설’에 남아 있는 신기전 설계도. 15 세기 이 전의 로켓 제작 설계도 중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채연석 박사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은 고려 말(1377년) 화통도감(火火甬都監)에서 최무선이 만든 주화(走火)다. '달리는 불'이라는 뜻의 로켓 무기 주화는 세종 30년(1448)에 신기전(神機箭)으로 발전했다.
신기전은 '귀신 같은 기계 화살'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화약의 힘으로 날아가는 화살이다. 소·중·대(小·中·大) 신기전과, 산화(散火) 신기전이 있었다. 간단히 보면 종이를 말아서 만든 로켓엔진인 약통에 연료를 채우고 대나무의 앞부분에 장착한 것이다.
로켓의 연료는 화약류 중 가장 오래전에 발명돼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흑색화약이다. 초석이라고 불리는 질산칼륨에 유황과 목탄을 섞어 만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최무선이 말똥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물의 배설물을 박테리아가 분해하면 질산칼륨이 나온다.
약통에 달린 심지에 불을 붙이면 흑색화약이 맹렬히 타면서 연소가스를 뒤로 분출한다. 화살은 그 반작용으로 앞으로 날아간다. 지금의 로켓 역시 이런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한다. 화살은 로켓이 똑바로 날아가도록 하는 안정막대 역할도 한다. 이 역시 지금의 로켓과 똑같은 비행원리다. 물론 지금의 로켓은 안정막대 대신 꼬리 날개나 전자유도제어장치를 달고 있다.
- ▲ 지난해 9월 부산 근처의 낙동강변에서 이뤄진 대신기전 복원 발사장면. 약 3㎏의 화약을 장 착한 당대 최대의 로켓 무기였다. 채연석 박사가 복원했다./채연석 박사 제공
◆2단 로켓 갖춘 산화신기전
소신기전은 화살이 화약의 힘으로 날아가 적을 직접 공략한다. 길이 1m의 대나무 화살의 앞부분에 화약 12g을 채운 약통을 달아서 100m 정도를 날아간다. 중신기전은 따로 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길이 1m42의 대나무화살의 앞부분에 화약 44g을 채운 약통과 '소발화'라는 소형 종이폭탄을 달아서 200여m를 날아간 뒤 폭탄이 폭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종의 미사일이다.
가장 큰 대신기전은 길이 5m30의 긴 대나무 앞부분에 화약 2.9㎏을 채운 초대형 로켓으로 최대 700~800m를 비행할 수 있었다. 지난해 복원, 발사에 성공했다. 약통의 앞부분에는 '대신기전발화통'이라는 대형 종이 폭탄을 설치해 목표물에 도착한 후 폭발하도록 설계됐다. 외국에서는 화약 3㎏이 들어가는 대형 로켓이 19세기 초에나 등장했으니 당대 최대 로켓인 셈이다.
'불꽃이 온 사방으로 흩어지는 신기전'이라는 뜻의 산화신기전은 1·2단 로켓 구조를 갖고 있었다. 크기는 대신기전과 같으나 대형 폭탄 대신 약통의 윗부분에 소형 폭탄인 소발화와, 작은 로켓엔진인 '지화'를 서로 묶어서 몇 개를 넣었다. 1단 로켓인 약통이 다 타면 2단 로켓인 지화가 점화돼 하늘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마지막에 소발화 폭탄이 폭발한다. 하늘에서 미친 듯 날아다니는 로켓과 이내 터지는 폭탄에 적군들은 혼이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리미터 단위 정밀도 갖춰
기록에 따르면 세종 29년(1447년) 평안도와 함길도에서만 3만5000여발의 주화와 신기전을 만들었다. 당시는 세계적인 과학자인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약무기 상상도를 그릴 때였다. 그때 우리 로켓무기는 이미 실전 배치된 것이다.
물론 당시 제작된 신기전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자세한 설계 기록이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남아 있다. 현재 15세기 이전의 로켓 제작 설계도는 세계적으로 신기전 설계도 이 외에는 없다.
신기전의 설계 기법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현대식 기계설계 기법과 똑같다. 예를 들어 약통의 수치를 쓸 때 내부 지름과 두께뿐 아니라 외부 지름도 명시했다. 내부 지름에 두께를 합하면 외부 지름이 되지만, 앞의 두 치수가 잘못 적힐 가능성도 있다. 부분 수치뿐 아니라 전체 수치도 적어 그런 오류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또 설계에 사용한 최소 길이 단위가 0.3㎜인 리(釐)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경탄할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