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치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namsarang 2009. 8. 28. 21:31

[사목일기]

치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김훈일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소위 간사, 청주교구 초중본당 주임)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삶의 의욕도 놓치기 쉽다. 먹고 사는 것 못지않게 아픈 몸을 치료하고 질병을 다스리는 의료제도를 잘 정비하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몫이다.
 북녘 의료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세계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무상 치료제'와 함께 '의사 담당 구역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담당 구역제'는 동네 리 단위까지 진료소를 설치, 의사 1명이 한 개 지역씩 맡아 책임지고 진료하는 방식이다.
 의사들은 주민들에게 매우 존경을 받고, 자부심도 높다고 한다. 그런데 북녘의 이 좋은 의료제도가 이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평양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남군 인민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녘의 의료현실이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병원 현장을 보고 있자니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제법 큰 병원인데도 1950년대에 도입했음직한 나무상자 엑스레이(X-ray) 촬영기를 쓰는 것을 보면서 북녘 의료제도가 이미 오래전에 붕괴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진단장비와 수술장비, 그리고 항생제 등과 같은 기초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북녘 의사들은 한방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한방치료를 북녘에서는 '고려의학'이라고 한다. 양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의사들은 산에서 약초를 캐고 그것을 정제해 의약품으로 쓰고 있다. 북녘 의약품의 70%가 이렇게 만들어진 고려의약품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녘에 전염성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결핵은 북녘 주민들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질병이다.  결핵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전염되기에 후진국형 질병이라고 한다. 북녘에는 결핵에 걸린 어린이들만 30만 명에 이른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영ㆍ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북녘 영ㆍ유아들이 사망에 이르는 주요 원인은 호흡기 감염과 설사, 영양 부족으로 인한 질병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흔한 해열제와 진통제, 지사제가 없어 아기들이 죽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낙태로 수없이 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고, 북녘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되면서도 정치적ㆍ이념적 장벽에 가로막혀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만들어진 분단의 악을 이겨낼 수 있는 신앙의 힘이 필요한 시대다. 하느님께서는 더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하고 계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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