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홈스테이, 마음을 나누다

namsarang 2009. 8. 29. 21:10

[사목일기]

홈스테이, 마음을 나누다


                                                           김훈일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소위 간사, 청주교구 초중본당 주임)

   새터민들이 들어오면 한국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하나원이라는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데, 그 숫자가 지난해 초에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 주변에 새터민들이 낯설지 않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셈이다.
 새터민들이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과정 가운데 남쪽 가정에서 하루를 보내며 체험학습을 하는 이른바 '홈스테이(Homestay)'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하나원과 함께하는 협력 프로그램이다.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본당 신부를 둔 덕에 우리 신자들은 벌써 두 차례에 걸쳐 새터민들과 홈스테이를 했다. 처음 홈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새터민들을 한 가정에 한 분씩 모시고 한국 사회의 평범한 가정생활을 보여주고, 천주교를 알려주기를 청했지만 선뜻 신청자가 나서지를 않아 몇몇 가정에 강제로 떠맡겼다.
 평소에는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본당 신부 모습이 좋다고 하더니, 막상 통일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설득을 해도 북녘 사람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홈스테이를 하기 며칠 전 하나원에서 연락이 왔다. 새터민 중에 한 사람은 혼자 가정에 보내지 말고 다른 새터민과 함께 가정에 머무를 수 있게 배려해 달란다. 정신적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자매님께 그 집에는 새터민이 두 명이 갈 것이라고 알려드렸더니, 왜 우리 집에는 두 사람이나 보내느냐고 항변을 한다. 모른 척하고 당일 두 사람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미사에 대부분 새터민들과 홈스테이 가정 식구들이 참례했다. 그리고 새터민들을 보낼 때, 두 새터민과 생활했던 자매님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처음 자신의 집에 온 새터민 자매가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지를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해 '무척 경계하는구나' 싶어 어색한 시간을 보냈는데, 저녁 때가 돼서야 이 새터민의 아픔을 봤다고 한다. 탈북 과정에서 두 차례나 북송을 당해 교화소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충격을 받았고 가족과 친지들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는 것이다.
 하루를 보내고 나니 말도 통하는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인데 왜 이런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며 이 새터민 자매가 남쪽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애처롭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자매님은 그 새터민 자매님과 연락하고 관심과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분단의 아픔이 아니라면, 그저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웃인데 우리는 스스로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을 구분한다. 그냥 도움이 필요한 평범한 이웃인데 말이다. 하루 빨리 우리도 북쪽 가정에 초대를 받아 평범하게 하루를 신세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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