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한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성소국장, 선교센터 원장)
파푸아뉴기니 멘디교구에선 교구 지침에 따라 내가 활동하는 마가리마본당 관할 18개 공소를 매달 방문해야 했다.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에 사목하던 마당대교구와 달리 대부분의 공소를 차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복 많기로 소문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차로 갈 수 있는 공소를 절반 가량은 걸어서 방문했다. 편의상 세 구역으로 나눠 한 구역씩 차례로 돌다보면 금방 한 달이 지나간다. 물론 개인 사정으로 모든 공소를 매달 방문하지는 못했다. 공소방문을 갈 때는 보통 4박 5일 일정을 잡고 새벽 4시에 사제관을 나선다. 춥고 깜깜한 새벽에 길을 떠나는 것은 이 곳 고산지대 지형 특성상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기에 그 전에 공소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차로 갈 수 있는 넓은 길을 걷기도 하고, 늪지대를 지나기도 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공소에 간다. 숨을 헐떡거리며 등산도 하고, 무릎의 심한 통증을 이기면서 한걸음씩 내려오기도 한다. 산 속에서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신자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가을 같은 선선한 기후와 따가운 태양 아래에서 '조금 힘든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나는 공소방문을 한다. 이 '조금 힘든 소풍'에 한가지 흠이라면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과거 신부들은 공소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설사 잠을 자더라도 자신이 먹을 음식을 가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신부의 식사는 각 공소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가끔은 요기도 못하고 잠을 자는 경우가 있다. 배가 고파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한다. 공소 가는 길에 너무 허기가 지면 드문드문 나타나는 구멍가게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라면 하나를 사서 생으로 먹고 물을 마신 후 뱃속에서 불어날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변화되는 신자들 모습을 보며 선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지저분한 헝겊가방에서 다 식은 고구마를 꺼내 수줍게 건네는 할머니를 통해 당신 아들이 허기질까 걱정하시는 성모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지럼증이 있어서 혼자서 건너가지 못하는 외나무 다리를 손잡고 건너주는 할아버지 모습에서 성부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배낭 진 내 모습이 힘들다며 배낭을 빼앗듯이 짊어지고 함께 걸어가는 형제들 모습에서 '나의 멍에는 가볍다'고 말씀하시는 성자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파푸아 뉴기니에서도 오지인 멘디교구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깊이 체험하면서 선교사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