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일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소위 간사, 청주교구 초중본당 주임)
재작년 성탄을 앞두고 북녘 주민들을 돕기 위한 대림 저금통을 초등부 어린이들에게 나눠 줬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착한 마음으로 어려운 북녘 주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도와준 것을 감사하고 고마워할 것이고, 예수님을 전하는 일도 쉬울 것이라는 설명을 하는데 한 녀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신부님, 통일을 왜 해요? 그냥 도와주기만 하면 안 돼요?" "통일이 돼야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고, 우리 민족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저는 북한 애들 싫어요. 그냥 먹을 거만 주고, 우리끼리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살기 힘들잖아요." 북녘을 도와주는 것도 싫어하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더 당혹스럽다.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이야 통일 이야기보다 전쟁의 아픈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 북녘에 호의적인 감정을 갖기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통일 문제를 순전히 경제논리로 접근할 때는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의 말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아주 가난한 북녘을 돕는 것이 얼마나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 못사는 북녘을 돕다가 우리도 못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핵 위협도 있었지만 그동안 북녘 실상이 알려지면서 우리 국민들의 생각이 이념적이고 감성적인 통일론에서 현실적 이익이 내재하는 통일론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특히 청소년들과 젊은 청년일수록 자신들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지 모르는 통일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북녘 형편이 더 어려워질수록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도 커진다. 북한은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이웃이 된 지 이미 오래다. 현실의 이익을 위해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더욱이 침묵하고 있는 교회를 재건하고 북녘 땅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할 사명을 가진 우리 신앙인의 의무는 너무나 크다. 우리는 북녘 땅에서 숨죽이며 하느님께 기도하다가 숨진 많은 북녘 신자들의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들은 오늘도 그 후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