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일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소위 간사, 청주교구 초중본당 주임)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에 마을 앞산은 놀이터였고 유년기 추억을 가득 간직한 곳이었다. 그 때는 왜 앞산에 나무가 없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람이 배고프고 춥고 가난하면 산도 나무도 가난하고 추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그래도 소박한 추억이 가득한 앞산이 아직도 그립다.
처음 북녘을 방문했을 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온 줄로 착각했다. 이념이니, 통일이니 하는 역사적 의미가 생각나기보다는 갑자기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거대한 영화 세트장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특히 북녘의 시골 풍경은 내 유년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안쓰러운 마음이 밀물처럼 들이쳤다.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이면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사가 조금이라도 완만하면 밭으로 개간해 쓰느라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짚으로 엮은 가마니를 실은 소달구지와 수십 년은 된 듯 싶은 트랙터와 트럭들이 길가를 오가는 풍경을 보면서 북녘 주민들의 고달픈 삶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도 간간히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11월 방북 때에는 함께 갔던 수녀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눈망울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녀님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는데 북측 안내원의 제지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 못해 섭섭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그런 수녀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은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시커먼 수도복에 검은 두건을 쓴 수녀님을 본 아이들은 저 사람이 남자일까? 여자일까? 왜 저런 이상한 옷을 입고 있을까?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 다시 수녀님을 보게 되면 어려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수녀님이 어려운 형편에 있는 북녘 주민들을 돕기 위해 매주 한 끼를 단식하고 기도하며 민족의 아픔에 함께했던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려서 '참 고마운 사람을 만났었구나'하고 생각할 듯도 싶었다. 그리고 그 고마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한때 가난하고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북쪽에는 그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과거의 우리가 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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