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 어머니를 뵈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몇 달 동안 꿈속에서 자주 어머니를 뵈었지만 그 후로는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꿈에 나타나셨다. 전날 충주 교현동성당에서 어머니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스럽게 북받쳐 올랐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6년이나 됐는데도 마치 엊그제 돌아가신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강의를 하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꿈 속에 어머니께서 나타나셨나 보다. 나는 꿈 속에서 어머니의 병 간호를 하며 대소변을 받아낸 뒤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있었다.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갈아드릴 수 있을지,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내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아주셨을지 숫자를 헤아려 보다가 잠이 깼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일어났던 일과 너무나 똑같은 일이 꿈에 재현된 것이다. 잠이 깨자마자 서재로 나와 내가 쓴 「예수님 흉내내기」 책을 펴서 '어머니의 기저귀'에 계산해 놓은 숫자를 읽어봤다. 내가 대변을 본 후 어머니께서 내 밑을 닦아주시기를 5년 동안 했다면 1825일이고, 하루에 두 번씩이라면 3650번 내 밑을 닦아주셨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오줌을 싸서 기저귀를 갈아준 기간이 3년이라면 1095일이고 하루에 네 번이라면 4380번이 된다. 그 밖에도 내게 젖이나 밥을 먹여주시고 내 몸을 씻어주시고 옷을 입혀주시고 보살펴주신 것을 숫자로 계산해보니 수천 번이 넘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내 밑을 3650여 번 닦아주셨으니 내가 어머니의 밑을 36번 닦아드려야 겨우 100분의 1을 갚는 것이다. 어머니가 내 기저귀를 4380여 번 갈아주셨으니 내가 어머니의 기저귀를 40번 갈아드려야 겨우 100분의 1을 갚는 것이다. 그밖에 어머니께서 내게 해주신 각종 사랑도 내가 100분의 1을 갚을 수 없음을 숫자로 계산해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어머니의 밑을 10번도 닦아드리지 못했고 기저귀를 20번도 갈아드리지 못했고 몸을 30번도 씻겨드리지 못했다. 결국 100분의 일도 갚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위사람들이 나를 효자라고 말하고 평화신문 등 매스컴에서도 나를 효자 신부로 소개했다(평화신문 774호 참조). 효자라니,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어머니께서 내게 해 주신 것의 10분의 1은커녕 100분의 1도 갚지 못한 내가 아니던가? 천국에 계신 어머니, 이제라도 잘 살아 당신 사랑에 보답하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