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namsarang 2009. 9. 8. 22:35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3주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본당 신부로 살다 보면 일년에 몇 차례 특별히 행복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 중 하나가 피정입니다. 피정을 가면 주어진 8일 중에 이틀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먹고 자기만 합니다. 자도 자도 잠은 잘 옵니다. 마치 시집간 여자가 친정에 가서 쉬고 자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푹자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그리고 나서 기도와 묵상을 하며 6일을 지내고 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겁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듭니다.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을 보아도 녹음이 짙은 것이 "아, 참 아름답구나"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들이마시는 공기에도 고마운 마음이 샘솟듯 솟아납니다. 평상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숨을 쉬게 해주는 공기가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닙니다.

 또 이때는 미워했던 사람이 떠오르면 빨리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풀기 어려웠던 문제도 다 사소한 것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고, 요구만 많은 본당 신자들이 가끔씩은 귀찮기도 했었는데 빨리 가서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피정을 통해 새 마음이 생깁니다. 눈이 새로워지고, 귀가 열리며, 감사의 말이 생겨납니다.
 
 "신부님, 피정 잘 다녀오셨어요?"
 "예,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신자들과 인사하면서 싱글벙글 좋은 말만 나옵니다. 놀라운 것은 피정을 가기 전이나 갔다 온 후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전히 정화되고 채워졌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새 마음이 오래 가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과 귀가 흐려지고, 입에서 가시 돋친 말이 툭툭 튀어나와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지면 '아, 이제 피정을 갈 때가 되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더듬는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병자는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주님의 놀라운 자비입니다.

 그런데 '에파타'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필요한 귀먹은 반벙어리는 예수님 시대에만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귀가 잘 들리고 말을 잘하며 눈으로 바르게 잘보고 있어 주님의 자비가 필요 없는 사람들일까요?

 내가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지는 나의 언행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긍정적이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매사에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면 예수님의 치료가 그다지 필요치 않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이 나한테 해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이 귀찮고, 모든 것이 짜증스럽게 느껴지면 예수님 은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입니다. 하느님 눈으로 보느냐, 나의 이기적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라집니다. 하느님 마음으로 사람과 사물을 대하게 되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나 중심적인 마음과 눈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게 되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불행해집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로 가득 찬 삶은 가시나무만이 난무할 따름입니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하느님 말씀으로 정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주변 사람이 보이고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