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한국 순교자 대축일-글자 몇개를 통해 진리이신 하느님 만난 유진길

namsarang 2009. 9. 20. 09:59

[생활 속의 복음]

한국 순교자 대축일-

글자 몇개를 통해 진리이신 하느님 만난 유진길


                                                            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순교자 믿음 본받아 죽도록 충성하리라∼"

 우리는 9월 순교자성월 내내 순교자 믿음을 본받자고 노래하고, 죽음을 넘어선 그들의 신앙을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본받자는 것일까요? 순교자성월이라고 해서 꼭 집어 무엇을 실천해본 적이 드물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우선 한 가지를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신심서적을 통해 진리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자는 제안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점을 꼽으라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나라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지만 우리 선조들은 책을 통해 진리이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한국 천주교 신앙의 역사는 책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을 왕래하던 동지사들에 의해 신문물이 유입되었고 그때 함께 들어온 책이 「천주실의」, 「칠극」 등 천주교 관련 서적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갈망하던 선비들은 그 책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알게 되면서 진리에 대한 더욱 깊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이벽 등 당대를 풍미하던 유학자들은 북한강 상류 앵자봉에 있는 천진암에서 일주일도 넘게 강학회(講學會)를 엽니다. 처음에는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학문으로 접하게 된 것입니다.

 천주학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었던 그들은 마침 중국으로 가는 이승훈에게 천주학에 관한 자료 수집을 부탁합니다. 이승훈은 중국에 있는 예수회 그라몽 신부를 찾아가 3개월간 왕래하며 필담으로 천주교에 대해 배우고 조선 천주교의 반석이 되라는 뜻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784년 귀국합니다.

 드디어 이승훈이 돌아왔고 이벽은 그가 가져온 책들을 받아들고 미리 얻어두었던 외딴 집에 들어가 수개월 동안 두문불출합니다. 몇 달이 지나 세상에 나온 이벽은 이승훈과 정약용을 만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서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시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 소명을 외면 할 수 없습니다"고 감격의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대대로 역관(譯官)을 지낸 부유한 가문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뒤 사역원 당상역관에 올랐던 유진길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특히 우주의 시작과 종말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만권의 책이 움직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해박했던 그는 불교, 유교 서적을 섭렵하지만 더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됩니다. 특히 1801년에 신유박해가 있었는데 천주학쟁이들이 큰 기쁨에 넘쳐 죽어간다는 말을 듣게 되고 천주교에 관심을 가져 보지만 박해로 인해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어느 날, 기진해서 집에 돌아와 쓰러져 누웠는데 귀퉁이에 놓여 있는 궤짝에 발라놓은 각혼(覺魂), 생혼(生魂)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정돈해서 보니 「천주실의」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그 책을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 없었고 어렵게 만난 신자를 통해 들은 천주교에 관한 몇 마디가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1823년에 마침내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듯 신심서적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그 귀한 신앙을 목숨 바쳐 후손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순교자성월을 지내며 순교자들의 진리에 대한 열정을 본받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순교성인들이 목숨 바쳐 읽고 공부해 진리이신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신심서적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이웃에 전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