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삶의 보람
요즘은 영 살 맛이 안 납니다. 집에 들어가봤자 자식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아버지가 들어와도 코빼기도 안 비치지요, 마누라는 TV 드라마 보느라고 본 척도 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내가 왜 사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무기력함 때문에 많이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마음을 고칠 수 있을까요?
A. 형제님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실존적 공허, 실존적 좌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빅터 프랭클은 사람들이 이런 좌절감과 공허감에 빠지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인생에 거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내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기대하다가 좌절감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좌절감에 빠진 사람이 그 감정에서 빠져 나오려면 인생에 대한 원망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큰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무엇인가 내가 마음을 다해 돌볼 수 있는 대상을 만나야 마음이 행복해지고 살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프랑스 노숙자의 삶이 방영됐습니다.
삼십 대 청년인 노숙자는 큰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노숙자가 무슨 개를 기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청년은 자기가 삶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 개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돌볼 대상이 있을 때 사람은 좌절감에 빠지지 않는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돈이 생기면 자기 먹을 것보다 개에게 먹일 것을 먼저 사는 성의를 보입니다. 개를 돌보고 키우는 보람에 살맛을 찾은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갖는 것은 내 인생을 의미 있고 살맛 나게 만드는 데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받는 괴로움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고 실토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신명나게 사는 분들을 보면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하는 분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죽고 싶고 허무한 마음이 들 때 그 생각의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창조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경구를 마음 안에서 되새긴다는 것입니다. 형제님에게 좋은 말씀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남긴 명언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기약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 사람의 자유는 생물ㆍ심리ㆍ사회학적 제반 조건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이들 조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는가 하는 자유이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인생은 당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딘가에는 당신을 요구하는 무언가가 있으며 당신을 필요로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무엇과 그 누구는 당신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Q2. 구원 불안증
집사람이 이상한 종교에 빠지더니 날이 갈수록 무엇이 불안한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면서 저보고도 같이 그 종교를 믿자고 강요합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 나가지는 않는데 자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마저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아 교리를 잘 모르지만 성당에서도 비슷한 교리를 배운 기억이 나서 더 힘이 듭니다.
A. 우선 구원론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군요. '주님을 믿으면 천당, 불신하면 지옥'이라는 말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고 고백하는 우리 교회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신앙명제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미워도 부모가 자식을 버리지 못하듯, 하느님 역시 그러하십니다.
그 근거는 집을 나가서 방탕한 삶을 살다 돌아온 둘째 아들을 받아준 아버지의 예와 십자가상에서 당신에게 구원을 청한 도둑을 받아주신 주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성가는 "구원이란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하거나 버리는 것이다"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깊습니다. 그런데 왜 자매님이 그런 종교에 빠졌을까요? 그것은 자매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자매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아주 매정한 분이었거나 조그만 일도 용서하지 않고 처벌을 하신 분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매님은 그런 자기 아버지를 하느님과 동일시 해서 신앙생활도 어린 시절 기억의 연장선상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매님에게는 신앙적인 설득보다 일정기간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doban87@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