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느긋한 남편이 미워요
저희 남편은 너무 낙천적이고 느긋합니다. 아이들 성적이 떨어져도 장사가 잘 안돼도 '다 하느님 뜻이 있을 거야'하면서 느긋해합니다. 그런 남편을 보는 저는 속이 터집니다. 어떡하면 남편의 그런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요? 요즘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데 남편은 아직도 전근대적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 답답합니다. 애들도 아빠를 닮았는지 느릿느릿하기만 해서 짜증이 더해갑니다.A. 자매님께서 답답해하실 만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면 남편이야말로 요즘처럼 마음의 병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아는 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짜증을 다스리는 법을 아는 듯해서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우리가 별로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중에 실상은 우리 인생길에 아주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짜증'입니다. 짜증은 일상적 감정이면서 우리 인생길의 순항을 방해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짜증은 마치 산길을 올라갈 때 들러붙는 풀과도 같고 배가 항해할 때 끈질기게 달라붙는 해초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짜증을 잘 해결하면 건강한 인생을 만들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병적인 인생을 만든다고까지 말합니다.
짜증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여러 가지 방정맞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런 생각들은 불안감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다시 심리적ㆍ신체적인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짜증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또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짜증이 난다고 급한 마음으로 일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짜증이 날수록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느긋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무조건 느긋하면 될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되 일의 사안에 따라 그 기다림 시간이 다른 것을 알아야 지혜로운 느긋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순환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주기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사안마다 모두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예컨대 밥을 짓는데 한 시간 주기가 필요한데 마음이 급하고 짜증이 난다고 밥솥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밥이 잘 될 리가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느긋한 마음으로 일주일 뒤에 밥솥 뚜껑을 연다면 당연히 탄 밥 밖엔 없겠지요.
이렇게 일 주기가 다 다르니 그것에 맞게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매님 물음에 대한 답은 '남편분은 좀 긴장되게 사시고 자매님은 더 느긋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시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Q2. 기도하기가 싫은데
오래전에 세례는 받았는데 기도 하기가 싫습니다. 기도가 왠지 시간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하거니와 기도문을 따라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 믿음이 부족한 탓인가요?A. 심리학자들이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비교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산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면 그만 마음의 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 사람의 약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상담가들을 찾게 되는데, 마치 심리치료에서 상담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처럼 기도 역시 그런 효과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사람들은 내적 아버지와 어머니 자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친부모가 있지만 때로 그 부모님과 관계가 원만치 않을 때 내적 고아 상태가 돼버려 어른이 돼서도 미성숙한 행동을 하거나 심각한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리며 살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 내 안의 부모 자리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셔서 마음의 건강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기도 중 성령의 이끄심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해 기도가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 하기 싫을까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감정을 표출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주어진 기도만 하거나 혹은 기도 시간이 지나친 자기 비난의 시간일 때 기도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언제라도 보고 싶지만 나를 늘 비난하거나 혹은 만나도 딱딱한 이야기만 주고받아야 하는 사람은 만나기 싫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은 주님을 형님처럼 생각하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doban87@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