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가르침)

제 1 편 신앙 고백

namsarang 2009. 9. 24. 21:43

제 1 편 신앙 고백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26 우리는 신앙 고백을 할 때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경으로 고백하고 전례 안에서 기념하며, 계명과 기도의 실천으로 생활화하는 신앙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신앙이란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내어 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이와 같은 인간의 추구를(제1장), 이어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계시를(제2장), 끝으로 신앙의 응답을 고찰하고자 한다(제3장).

 

제 1 장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인간

I. 하느님을 향한 갈망

27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께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시며,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고 자기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 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은 온전히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없다.1)

 

28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그들의 신앙과 종교적 행위들(기도, 제사, 예배, 묵상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찾는 길을 표현해 왔다. 이러한 표현 양식들은, 비록 모호한 점들을 내포할 수 있기는 하지만,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므로 인간을 종교적인 존재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또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사도 17,26-28)

 

29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2)을 종종 망각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백하게 거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매우 다양한 근원에서 비롯될 수 있다.3) 곧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인 무지나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4)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 그리고 끝으로,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5) 그분의 부름을 듣고 달아나는,6) 죄인인 인간의 태도 등이다.

 

30 “주님을 찾는 마음은 즐거워하여라”(시편 104[105],3). 비록 인간은 하느님을 잊거나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모든 이를 끊임없이 부르신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느님을 찾으려면 자신의 모든 지성적 노력, 올바른 지향, ‘바른 마음’, 그리고 하느님을 찾도록 가르치는 다른 이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주님, 주님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기림직하옵시며, 그 힘은 능하시고 그 지혜로우심은 헤아릴 길 없나이다.” 당신께서 내신 한 줌 창조물인 인간이, 죽을 운명을 지녔으며, 자신의 죄와 “당신께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신다.”는 증거를 스스로 지닌 바로 그 인간이 당신을 기리려 하나이다. 당신의 한 줌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찬미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찬미하여 기쁨을 누리도록 인간을 일깨워 주십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7)

 

II. 하느님 인식에 이르는 길

 

31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부름 받아, 하느님을 찾고 있는 인간은 하느님께 대한 인식에 이르는 몇 가지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길은, 자연 과학의 영역에서 얻어진 증거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참된 확실성에 이르게 하는 ‘일관성과 설득력을 가진 논증’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존재 증명’이라 하기도 한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이러한 ‘길’들은 창조계, 곧 물질 세계와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32 세계: 운동과 변화, 우연,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하여 우리는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이교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로마 1,19-20).8)

 

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땅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바다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드넓게 퍼져 가는 대기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하늘의 아름다움에게 묻고……이 모든 실재하는 것에게 물어 보십시오. 모든 것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들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고백입니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들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9)

 

33 인간: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개방성, 윤리적 선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영혼의 표지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영원의 씨앗은 한갓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10)이므로, 이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34 세계와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도 마침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존재’에 참여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여러 가지 ‘길’을 통해서 “모두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11) 제1원인이며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35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친밀해지도록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럼에도 하느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은 신앙을 준비시킬 수 있으며,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 줄 수 있다.

 

III. 교회의 하느님 인식

 

36 “우리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는, 인간이 이성의 타고난 빛을 통해서 피조물로부터 출발하여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가르친다.”12)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습대로”(창세 1,27)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37 한편 인간이 처한 역사적 조건들 안에서 이성의 빛만으로 하느님을 인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간단히 말해서, 실제로 인간 이성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빛으로써, 당신 섭리로 세상을 보호하고 다스리시는 인격적인 하느님과, 창조주께서 우리 영혼 안에 심어 놓으신 자연법에 대한 참되고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본성적 능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결과를 얻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리들은 감각적인 사물들의 질서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진리들이 구체적인 행동에 적용되고 삶을 형성하게 될 때에는 자기를 바치고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진리들을 얻기 위해서 인간의 정신은 감각과 상상력의 충동뿐 아니라, 원죄에서 발생한 그릇된 욕망들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일들에서, 스스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들이 거짓이거나 적어도 불확실한 것이라고 쉽게 믿어 버립니다.13)

 

38 그러므로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들뿐 아니라 “이성으로 접근 가능한 종교적 윤리적 진리들도 현재의 인간 조건에서도 더 쉽게, 확실히, 오류 없이 알기 위해서는”14) 하느님 계시의 빛이 필요하다.

 

IV. 하느님께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39 교회는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옹호함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또 모든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께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확신은 다른 종교, 철학, 과학, 그리고 또 믿지 않는 사람이나 무신론자들과 나누는 대화의 출발점이 된다.

 

40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말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단지 피조물들로부터 출발하여, 그리고 인식과 사고의 한계를 가진 인간적 방식으로만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41 피조물들은 모두 하느님과 어떠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더욱더 그러하다. 피조물들의 다양한 완전성(진·선·미)은 하느님의 무한한 완전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의 완전성을 근거로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것들을 만드신 분을 알 수 있다”(지혜 13,5).

 

42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신다. 따라서 “형언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볼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15) 하느님을 우리의 인간적인 표현으로 뒤바꾸지 않으려면, 우리의 언어가 가지는 한계와 상상과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정화해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말은 언제나 하느님의 신비에 미치지 못한다.

 

43 이처럼 하느님께 대해 말할 때 우리의 언어가 인간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하느님께 실제로 다다르기는 하지만 그분의 무한한 순수성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참으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그 차이점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16) “우리는 결코 하느님께서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무엇이 아닌지 알 수 있을 뿐이며, 다른 존재들이 그분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17)

 

간추림

 

44 인간은 그 본성으로나 소명으로나 종교적인 존재이다.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인간은 오직 하느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 자유로이 살아갈 때에만 그 삶이 충만해진다.

 

45 인간은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으며,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제가 온전히 당신 안에 있을 때 더 이상 고통도 시련도 없을 것이며, 당신으로 충만할 때 제 삶은 완성될 것입니다.”18)

 

46 피조물들의 알림과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 인간은 만물의 원인이며 목적이신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

 

47 교회는, 인간이 타고난 이성의 빛의 도움으로 우리의 창조주이고 주님이시며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을 그분의 업적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19)

 

48 비록 한정된 우리의 언어가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담아낼 수는 없지만,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께 대한 유사성을 지닌 피조물들의 다양한 완전성에 근거하여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49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진다.”20)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과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느님의 빛을 가져다 주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들을 재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6. 사도 2,42 참조.

7.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1항: AAS 71(1979), 1277-1278면 참조.

8.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18항: AAS 71(1979), 1292면.

19.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18항: AAS 71(1979), 1292면 참조.

10.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13항: AAS 71(1979), 1288면.

11. 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최종 보고서, II, B, a, 4, 11면.

12. 요한 바오로 2세, 1985년 12월 7일에 한 연설, 6: AAS 78(1986), 435면.

13. 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최종 보고서, II, B, a, 4, 11면.

14. 마태 10,32; 로마 10,9 참조.

1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20-22항: AAS 71(1979), 1293-1296면; 같은 책, 25항: AAS 71(1979), 1297-1298면 참조.

16. 「로마 교리서」, 서문, 11항: P. Rodriguez`편(바티칸-팜플로나 1989), 11면.

17. 「로마 교리서」, 서문, 10항: P. Rodriguez`편(바티칸-팜플로나 1989), 10면.

1. 사목 헌장, 19항.

2. 사목 헌장, 19항.

3. 사목 헌장, 19-21항.

4. 마태 13,22 참조.

5. 창세 3,8-11참조.

6. 요나 1,3 참조.

7.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1, 1, 1: CCL 27, 1(PL 32, 659-661).

8. 사도 14,15-17; 17,27-28; 지혜 13,1-9 참조.

9.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241, 2: PL 38, 1134.

10. 사목 헌장, 18항. 14항 참조.

11.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1, q. 2, a. 3, c.: Ed. Leon. 4, 31.

12.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Dei Filius, c. 2: DS 3004. 같은 책, 「계시에 대하여」, c. 2: DS 3026; 계시 헌장, 6항 참조.

13. 비오 12세, 회칙 Humani generis: DS 3875.

14. 비오 12세, 회칙 Humani generis: DS 3876.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Dei Filius, c. 2: DS 3005; 계시 헌장, 6항;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1, q. 1, a. 1, c.: Ed. Leon. 4, 6 참조.

15. 비잔틴 전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감사기도: F.E. Brightman 편, 「동방과 서방의 전례」(옥스퍼드 1896), 384면(PG 63, 915).

16.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제2장, 「요아킴 아빠스의 오류에 대하여」: DS 806.

17.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이교도 논박」, 1, 30: Ed. Leon. 13, 92.

18.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10, 28, 39: CCL 27, 175(PL 32, 795).

19.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Dei Filius, 「계시에 대하여」, c. 2: DS 3026 참조.

20. 사목 헌장, 36항.

 

 

 

제 2 장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

 

50 자연적 이성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업적으로부터 확실하게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인식의 질서, 곧 신적 계시의 질서가 존재한다.1) 하느님께서는 완전히 자유로운 결정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내어 주신다. 이것은 온 인류를 위하여 영원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마련하신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과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심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파견하시어 당신의 계획을 충만히 계시하신다.

 

제1절 하느님의 계시

 

I.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을 알려 주신다

 

51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善性)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 이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2)

 

52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신”(1디모 6,16)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자유로운 인간들을 당신의 외아들 안에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3) 당신의 신적 생명을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인간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서서 당신께 응답하고, 당신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

 

53 이 계시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계획은 “서로 긴밀히 결합된 행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4) 이 계획에는 독특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점진적으로 인간에게 당신을 알려 주시며, 사람이 되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명 안에서 절정에 이르게 될 초자연적 계시를 받아들이도록 단계적으로 인간을 준비시키신다.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은 거듭 이러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을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친해지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부의 뜻에 따라 인간 안에 머무르셨고, 인간이 하느님을 깨닫는 데 익숙하게 하고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계시는 데에 친숙하게 하시려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5)

 

II. 계시의 단계

 

처음부터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신다

 

54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에 관한 영원한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고 천상적 구원의 길을 터 주시고자 하셨을 뿐 아니라, 원조(元祖)들에게 처음부터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6)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빛나는 은총과 정의를 입혀 주시어 당신과 이루는 긴밀한 일치로 초대하셨다.

 

55 이러한 계시는 원조들의 죄로 단절되지 않았다. 실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타락한 후에는 구속을 약속하시어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 주셨고, 선업(善業)에 항구하며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끊임없이 인류를 돌보셨다.”7)

 

비록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잃었으나 죽음의 세력 아래 버려 두시지 않고……또한 사람들과 거듭 계약을 맺으셨나이다.8)

 

노아와 맺으신 계약

 

56 죄 때문에 인류의 단일성이 깨어진 뒤, 하느님께서는 우선 갈라진 민족들 하나하나를 구원하고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자 하셨다. 대홍수 이후 노아와 맺으신 계약은9) “지방과 언어와 씨족과 부족을 따라 갈려 나간 백성들”(창세 10,5)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낸다.10)

 

57 우주적이며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다양한 민족들의 이 질서는11) 타락한 인류의 교만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교만하게도 바벨탑 사건에서처럼, 한 마음으로 악을 꾸며12) 스스로 일치를 이루려 하였다.13) 인류의 죄 때문에, 이 질서는 다신교라든가, 국가와 왕의 우상화 등 이교도적인 타락으로 끊임없이 위협받게 되었다.14)

 

58 노아와 맺은 계약은 민족들의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15) 곧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될 때까지 유효하였다. 성서는 이러한 “이방 민족들”의 몇몇 위대한 인물들을 공경한다. “의인 아벨”, 그리스도의 예표이며16) 왕이자 사제인 멜기세덱,17) “노아, 다넬, 욥”(에제 14,14)과 같은 의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러”(요한 11,52)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노아의 계약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드높은 성덕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다

 

59 하느님께서는 흩어진 인류를 하나로 모으고자,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 하고 아브람을 부르심으로써 그를 선택하시어 아브라함, 곧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창세 17,5) 삼으신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창세 12,3).18)

 

60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백성은 성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어받는 선택된 백성이 될 것이며,19) 장차 교회의 일치 안에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모을 준비를 하도록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20) 그 백성은 이방인들이 신앙인으로 접목될 뿌리가 될 것이다.21)

 

61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다른 위대한 인물들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교회의 모든 전례 전통에 따라 성인으로 공경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다

 

62 성조들 이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당신 백성으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내려 주심으로써 당신께서만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이시요 섭리의 아버지이시며 정의의 판관이심을 알려 주셨고, 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게22) 하셨다.

 

63 “주님의 이름을 받은”(신명 28,10)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제적 백성이다.23) 그들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을 건네신”24) 백성이며 아브라함의 신앙 안에서 ‘맏형’격인 백성이다.25)

 

64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구원의 희망을 간직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26) 모든 사람의 가슴에 새겨질,27)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기다리라고 가르치신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백성이 완전히 속량되고, 그들의 모든 불성실이 정화되며,28) 모든 민족을 망라할 구원을 선포한다.29) 이러한 희망은 특별히 주님의 가난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30) 사라, 리브가, 라헬, 미리암, 드보라, 안나, 유딧, 에스델 등과 같은 거룩한 여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생생한 희망을 간직했었다. 이 희망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 마리아이다.31)

 

III. “모든 계시의 중개자이시며 충만”32)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65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이시다. 성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많은 사람들의 뒤를 이어 이러한 사실을 히브리서 1장 1-2절의 주석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주실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 당신 아드님 전체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예언자들에게는 부분적으로 말씀하셨던 것들을 당신 아드님 안에서는 전부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동시에 그리고 단 한 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 다시 그분께 문의한다든지 또는 어떤 환시나 계시를 바란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눈을 돌리지 않고 그분과는 다른 것이나 어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33)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66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34) 그러나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시대를 살아가며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

 

67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른바 ‘사적’ 계시들이 있었고, 그 중의 어떤 것들은 교회의 권위에 의해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에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교도권의 인도에 따라, 신자들은 신앙 감각으로 이러한 계시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나 성인들께서 교회에 하신 진정한 호소를 식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긿그리스도께서는 계시의 완성이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벗어나거나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다른 ‘계시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스도교가 아닌 일부 종교들과 신흥 종파들은 바로 이런 부류의 ‘계시들’에 근거하여 세워진 경우이다.

 

간추림

 

68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 주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묻는 인간의 질문에 결정적이고도 풍부한 답을 주신다.

 

69 하느님께서는 업적과 말씀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당신 신비를 알리시어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셨다.

 

70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하여 당신 자신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셨으며, 더 나아가서 우리 원조들에게 당신 자신을 보여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건네셨고, 그들이 죄를 지은 뒤에는 구원을 약속하셨으며35)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다.

 

71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사이에 영원한 계약을 노아와 맺으셨다.36) 이 계약은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7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그와 그 후손들과 계약을 맺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7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셨고, 그분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다. 그 아들이 바로 성부의 결정적인 말씀이시므로, 그분 이후에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제2절 하느님 계시의 전달

 

7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1디모 2,4).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3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셔야 하며, 계시는 세상 끝까지 전해져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모든 것이 영구히 온전하게 보존되고 모든 세대에 전해지도록 매우 자비로이 배려하셨다.38)

 

I. 사도 전승

 

7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39)

 

사도들의 복음 선포

 

76 복음은 주님의 명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졌다.

- 구두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일깨우심으로 배운 것들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

- 문서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다.”40)

 

사도적 계승으로 지속되는 복음 선포

 

77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 주었다.’”41) 그러므로 “영감 받은 책들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도적 설교는 세상 종말까지 지속적인 계승으로 보전되어야 했다.”42)

 

7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생생한 전달은 성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성서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성전’(聖傳)이라고 부른다. 이 성전을 통해서, “교회는 그 교리와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43) “거룩한 교부들은 이 성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과 생활 속에 풍부히 흐르고 있음을 증언한다.”44)

 

79 이처럼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전해 주시는 통교는 교회 안에 현존하며 작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부히 머물도록 하신다.”45)

 

II. 성전과 성서의 관계

 

하나의 공통적 원천

 

80 “성전과 성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46) 이 둘은 모두 “세상 끝날까지 항상”(마태 28,20)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교회 안에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한다.

두 가지의 다른 전달 양식

 

81 “성서는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은 성전으로 후계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데, 후계자들은 진리의 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자신의 설교로 그 말씀을 충실히 보존하고 해설하며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47)

 

82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과 해석을 위임받은 교회는 “오로지 성서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48)

 

사도 전승과 교회 전승들

 

83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성서가 없었으며, 신약성서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 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III. 신앙의 유산에 대한 해석

 

전체 교회에 맡겨진 신앙의 유산

 

84 성전과 성서에 담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은49) 사도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에 맡겨졌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이 유산에 충실하면서,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 그리하여 전해진 신앙을 고수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면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50)

 

교회의 교도권

 

8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51)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86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52)

 

87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가 10,16)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여 그들의 목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인다.53)

 

신앙의 교의

 

88 교회의 교도권이 교의(敎義)를 정의할 때, 곧 하느님의 계시에 담긴 진리나 이 진리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는 진리들에 관한 번복할 수 없는 신앙의 동의를 그리스도 백성에게 의무적인 형태로 요구할 때, 이는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받은 권위에 근거한다.

 

89 우리의 영적인 삶과 교의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교의는 우리 신앙의 길을 비추는 빛으로서 이 길을 밝혀 주고 확실하게 해 준다. 거꾸로 우리의 삶이 올바르면 우리의 지성과 마음은 개방되어 신앙 교의의 빛을 받게 될 것이다.54)

 

90 교의들 사이의 상호 관계와 일관성은 그리스도 신비의 계시 전체에서 찾을 수 있다.55) “가톨릭 교회의 여러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이루는 관계는 서로 다르므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56)

 

초자연적 신앙 감각

 

91 모든 신자는 계시된 진리의 이해와 전달에 참여한다. 그들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시고”(요한 16,13)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57)

 

92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58)

 

93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는……‘성도들에게 한 번 전해진 믿음’을 온전히 지키며, 올바른 판단으로 그 믿음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믿음을 실생활에서 더욱 충만히 적용한다.”59)

 

신앙 이해의 발전

 

94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 유산의 실재에 대한 이해와 그 언어에 대한 이해는 교회의 삶에서 발전할 수 있다.

- “마음 깊이 그것을 새겨 간직하는 신자들의 명상과 공부”60)를 통하여;

특히 “계시 진리의 깊은 이해는……신학적 탐구로 이루어진다.”61)

- “영적인 것들에 대한 좀더 깊은 인식”62)을 통해 쌓이는 신자들의 경험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읽는 사람과 함께 성장한다.”63)

- “주교직 계승을 통해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이들의 설교”64)를 통하여 그 이해가 깊어진다.

 

95 “그러므로 성전과 성서와 교회 교도직은 하느님의 지극히 지혜로우신 계획에 따라 각기 독립되어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셋 모두 함께 고유한 방식대로 성령의 활동 아래 영혼의 구원에 효율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65)

 

간추림

 

96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게 맡겨 주신 것을, 성령의 감도를 받아, 설교와 글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까지 모든 세대에 전달하였다.

 

97 “성전과 성서는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66) 순례자인 교회는 이를 통해서,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신의 모든 풍요로움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관상한다.

 

98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과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그 자신의 모든 것과 그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67)

 

99 하느님 백성 전체는 초자연적 신앙 감각을 통하여 하느님 계시의 선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더욱 깊이 이해하며, 더욱 충실히 생활화하게 된다.

 

100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곧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교리(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 문   (0) 2009.09.29
제 4 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0) 2009.09.28
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   (0) 2009.09.26
제 2 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0) 2009.09.25
가톨릭4대교리 (四大敎理)   (0) 200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