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가르침)

제 2 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namsarang 2009. 9. 25. 22:47

 

제 2 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전례는 왜 거행하는가?

 

1066 교회는 신경을 통하여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와, 만물에 대한 “그분의 호의에 따른 당신 뜻의 신비”(에페 1,9)를 고백한다. 성부께서는 세상의 구원과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시는 성자와 성령을 주심으로써 “당신 뜻의 신비”를 실현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이다.1) 이 신비는 지혜롭게 정해진 계획에 따라 역사 안에서 계시되고 실현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신비의 경륜”(에페 3,9)이라고 부르며, 교부들의 전통은 ‘강생하신 말씀의 경륜’ 또는 ‘구원 경륜’이라고 부른다.

 

1067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이 일은 구약의 백성 안에서 하느님의 위업으로 준비되었으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특히 당신의 복된 수난과 저승에서 살아나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의 파스카 신비,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부활로 생명을 되찾아 주신’ 그 신비를 통하여 성취하셨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잠드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온 교회의 놀라운 성사가 솟아 나왔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교회는 전례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원 사업을 완수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한다.

 

1068 교회는 전례 안에서 바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한다. 이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이 신비로 살아가고 이 신비를 증언하게 하려는 것이다.

 

전례를 통하여, 특히 거룩한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므로”, 전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다.3)

 

‘전례’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1069 전례(典禮)라는 말은 본래 ‘공적인 일’, ‘백성들의, 백성들을 위한 봉사’를 뜻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4) 참여함을 의미한다. 우리 구속주이시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전례를 통해서, 당신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구속을 위한 일을 계속하신다.

 

1070 신약성서에서 ‘전례’(Leitourgia)라는 단어는 하느님께 대한 예배의 거행뿐5) 아니라 복음 선포와6) 사랑의 실천도7) 가리킨다. 이 모든 경우가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함을 뜻한다. 전례를 거행할 때 교회는 유일한 “제관”(Leitourgos)이신8) 주님의 모습을 따라 시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제직(예배), 예언자직(복음 선포), 왕직(사랑의 봉사)에 참여한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경배를 드린다. 따라서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9)

 

삶의 원천인 전례

 

1071 그리스도의 행위인 전례는 당신 교회의 행위이기도 하다. 전례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이루는 친교를 볼 수 있는 표징이 되게 하고 이를 드러낸다. 전례는 신자들을 새로운 공동체 생활로 이끌며, 모든 사람이 “잘 알고,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10) 참여하도록 요구한다.

 

1072 “거룩한 전례가 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11) 전례에 앞서 복음 선포와 신앙과 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전례는 신자들의 생활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열매는 바로 성령에 따르는 새로운 삶, 교회 사명에 참여, 그리고 교회의 일치를 위한 봉사이다.

 

기도와 전례

 

1073 전례는 또한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는 전례에서 시작되고 전례로 완성된다. 인간은 전례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당신 아들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에페 2,4)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기초 위에 내적으로 서게 된다.12) 우리는 “어느 때에나 성령 안에서”(에페 6,18) 모든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생활화하고 내면화한다.

 

교리교육과 전례

 

1074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13) 그러므로 전례는 하느님 백성의 교리교육을 위한 가장 훌륭한 자리다. “교리교육은 전례 활동 및 성사 거행과 불가분의 연관을 갖는다. 그 이유는 성사, 특히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인간의 변화를 위하여 활동하시기 때문이다.”14)

 

1075 전례를 통한 교리교육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상징에서 상징하는 실재로, ‘성사’에서 ‘신비’로 진행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 인도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이것이 신비교육[mystagogia]이다). 이러한 교리교육은 각 지역의 교리서들에 맡겨진 과제다. 다양한 전례 예법과 문화를 지닌 모든 교회15)를 위해 쓰여진 이 교리서는 신비의 거행인 전례에 관련되는 기본적인 것과 모든 교회에 공통적인 것을 제1부에서 설명한 다음에, 칠성사와 준성사를 제2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에페 3,4 참조.

2. 전례 헌장, 5항.

3. 전례 헌장, 2항.

4. 요한 17,4 참조.

5. 사도 13,2; 루가 1,23 참조.

6. 로마 15,16; 필립 2,14-17.30 참조.

7. 로마 15,27; 2고린 9,12; 필립 2,25 참조.

8. 히브 8,2.6 참조.

9. 전례 헌장, 7항.

10. 전례 헌장, 11항.

11. 전례 헌장, 9항.

12. 에페 3,16-17 참조.

13. 전례 헌장, 10항.

14.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23항: AAS 71(1979), 1296면.

15. 전례 헌장, 3-4항.

   

제 1 부 성사의 경륜

 

1076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1) 성령 강림은 ‘신비의 나눔’(dispensatio) 안에서 새로운 시대, 곧 교회의 시대를 연다. 이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당신 교회의 전례를 통하여 구원 활동을 드러내고, 현존하게 하고, 전해 주신다.

 

교회 시대라는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 안에, 교회와 더불어 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계시고 활동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들을 통하여 활동하신다. 바로 이것을 동방과 서방의 전통은 한결같이 ‘성사의 경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성사의 경륜은 교회가 ‘성사의’ 전례 거행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서 얻은 열매를 전해 주는(또는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이러한 ‘성사의 경륜’을 우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제1장). 이렇게 함으로써 전례 거행의 성격과 본질적 면모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제2장).

 

제 1 장 교회 시대의 파스카 신비

 

제1절 거룩하신 삼위의 행위인 전례

 

I. 전례의 원천이며 목적이신 성부

 

107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에페 1,3-6).

 

1078 강복은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행위이며, 그 생명의 원천은 성부이시다. 그분의 강복은 ‘말씀이요 선물’(bene-dictio, eu-logia)이다. 사람 편에서 보면, 축복(benedictio)이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창조주께 드리는 ‘흠숭과 봉헌’을 의미한다.

 

1079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강복이다. 최초의 창조에 대한 전례 시가(典禮詩歌)에서부터 천상 예루살렘의 찬미가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받은 저자들은 구원 계획이 무한한 하느님의 강복이라고 선포한다.

 

1080 태초부터 하느님께서는 모든 생명체, 특히 남자와 여자에게 강복하셨다. 땅이 “저주를 받게 된” 원인인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그 외의 모든 생물과 맺으신 계약은 번성을 위한 이 강복을 새롭게 한다.

 

그러나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던 인간의 역사를 생명으로, 그 원천으로 되돌려 놓은 하느님의 강복이 역사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브라함부터이다. 강복을 받아들인 “믿는 이들의 조상”의 신앙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081 하느님의 강복은 이사악의 탄생, 출애굽(파스카와 탈출), 약속된 땅을 주신 일,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일, 하느님께서 성전에 현존하시는 것, 정화를 위한 귀양살이, 그리고 ‘소수의 남은 자들’의 귀환 등 놀라운 구원 사건 안에서 드러난다. 선택된 백성의 전례의 골격을 이루는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강복을 환기시키며, 동시에 찬미와 감사로 그에 응답한다.

 

1082 하느님의 강복은 교회의 전례에서 온전하게 드러나고 전달된다. 성부께서는 피조물을 위한 모든 강복과 구원의 원천이며 목적으로 인정되시고 흠숭을 받으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강생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복으로 채워 주시며, 그 ‘말씀’을 통해서 모든 선물을 포함하는 ‘선물’, 곧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다.

 

1083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교 전례가 성부께서 베푸시는 ‘영적 축복’에 대한 신앙과 사랑의 응답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지녔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 교회는 주님과 일치하여 “성령의 감도를 받아”2) 흠숭과 찬양과 감사를 통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2고린 9,15)에 대하여 성부께 찬미를 드린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될 때까지 성부께 “당신께서 주신 선물을 제물로 드리고”, 당신의 성령을 이 제물과 교회 자신과 신자들과 온 세상에 보내 주시도록 간청한다. 또한 교회는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이 강복들이 “영광스러운 당신 은총을 찬양하기 위한”(에페 1,6)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끊임없이 간청한다.

 

II. 전례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행위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1084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어” 성령을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에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 주고자 세우신 성사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성사들은 우리 인간이 감지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표징(말씀과 행위)이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의 행위와 성령의 힘으로 그것들이 가리키는 은총을 실제로 이루어 준다.

 

1085 교회의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나타내시고 실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활 동안 가르침을 통해 파스카 신비를 알려 주시고, 이를 행동으로 예고하셨다. 당신의 때가 이르자3) 예수님께서는 지나가 버리지 않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을 겪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로마 6,10; 히브 7,27; 9,12)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이는 우리의 역사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면서도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다른 모든 역사상의 사건들은 한 번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과거에 묻혀 버린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과거 안에만 머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물리치셨으며, 그리스도의 모든 것, 곧 모든 인간을 위하여 그분이 행하고 겪으신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시대에 현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영속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생명으로 이끌고 있다.

 

사도 교회 때부터

 

1086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을 파견하시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하느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사탄의 세력과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아버지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는 소식을 알리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선포하는 구원 활동을 모든 전례 생활의 중심인 희생 제사와 성사들을 통하여 수행하게 하셨다.”4)

 

1087 이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당신의 성화하는 권능을 맡기셨다.5)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사적 표징이 된다. 사도들은 같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이 권능을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맡긴다. 이러한 ‘사도적 계승’은 교회의 전례 생활의 전체 구조를 이루며, 이 계승 자체도 성품성사로 전달되는 성사적인 것이다.

 

…… 지상의 전례에 현존하시는데,

 

1088 “이토록 큰 일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당신 친히 그 때에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또한 특히 성체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끝으로,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하신다.”6)

 

1089 “하느님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이 위대한 행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 신부인 교회를 언제나 당신과 결합시키시며, 교회는 자기 주님을 부르며 또 주님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경배를 드린다.”7)

 

지상 전례는 천상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1090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하며 나그네들인 우리가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본다. 그 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와 참다운 성막의 사제로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주님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친교에 참여하기를 바라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그분을 기다린다.”8)

 

III. 전례 안에서 성령과 교회

 

1091 전례에서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의 스승이시며, ‘하느님의 걸작’ 곧 신약의 성사들을 만들어 내는 장인(匠人)이시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바라시는 일과 하시는 일은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신 신앙의 응답을 받으실 때에 비로소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진다. 이 협력을 통해서 전례는 성령과 교회가 함께 하는 일이 된다.

 

1092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신비를 성사적으로 베푸실 때에도 구원 경륜의 다른 때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교회가 자기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고, 믿는 회중에게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고 나타내 주시며, 당신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현존하게 하고 실현하신다. 그리고 끝으로 친교의 성령께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명에 결합시키신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신다

 

1093 성령께서는 성사의 경륜 안에서 구약의 표상들을 완성하신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약에서 오묘하게 준비”9)되었으므로, 교회의 전례는 다음과 같은 구약시대 예배의 여러 요소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이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다.

- 무엇보다도 구약성서의 독서

- 시편 기도

-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그 완성을 이루게 된 구원의 사건들과 의미심장한 사실들(약속과 계약, 탈출과 파스카, 왕국과 성전, 유배와 귀환)에 대한 기념.

 

1094 신약과 구약의 이러한 조화10) 위에 주님의 파스카에 대한 교리교육이 이루어지고,11) 다음으로 사도들과 교부들의 교리교육이 이어진다. 이 교리교육은 구약성서의 글자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 곧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낸다. 이러한 교리교육은 첫 번째 계약의 사실들, 말씀들, 상징들로 예고된 ‘형상’(예형:typos)들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새로움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를 ‘예형론적’ 교리교육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여 진리의 성령 안에서 성서를 새롭게 읽음으로써 형상들의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12) 예를 들면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는 세례를 통한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며,13) 구름과 홍해를 건넘도 역시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형이며, 바위에서 솟아나온 물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선물의 예형이고,14) 사막의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요한 6,32)인 성체의 예형이다.

 

1095 그러므로 교회는 특히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활 성야에, 전례의 ‘오늘’ 안에서 구원 역사의 이 큰 사건들을 다시 읽고 생생하게 되살린다. 이를 위해서 교리교육은 구원 경륜에 대한 ‘영적’ 이해에 눈뜨도록 신자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교회의 전례는 이 구원 경륜을 드러내 보이며, 우리가 이를 생활하도록 해 준다.

 

1096 유다교 전례와 그리스도교 전례. 유다인들이 지금도 고백하며 실행하고 있는 그 믿음과 종교 생활을 잘 이해하면 그리스도교 전례의 여러 면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의 선포, 이 말씀에 대한 응답, 찬미의 기도와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전구,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 등에서 성서는 전례의 기본적 요소가 된다. 말씀 전례가 지닌 고유한 구조의 기원은 유다교의 기도이다. 성무일도, 다른 전례문들과 양식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포함한 우리의 가장 소중한 기도문까지, 유다교 전례와 유사한 점이 많다.

 

미사의 ‘감사기도’들도 유다교 전통의 전형적인 기도문들을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유다교 전례와 그리스도교 전례의 유사성뿐 아니라 그 내용의 상이성도 파스카와 같은 전례 주년의 대축일들에서 아주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이 모두 파스카를 기념하되, 유다인들은 미래를 지향하는 역사상의 파스카를,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결정적인 완성을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된 파스카를 기념한다.

 

1097 신약의 전례에서 모든 전례 행위, 특히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의 거행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만남이다. 전례를 위해 모인 회중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 안에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으시어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으로” 하나가 된다. 전례 회중은 인간적, 인종적, 문화적, 사회적 관계를 넘어선다.

 

1098 회중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여야 하며, 마음의 준비를 잘 갖춘 백성이 되어야 한다.15) 이러한 마음의 준비는 성령과 회중이 공동으로 하는 일이지만, 특히 집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은총은 신앙과 마음의 회개 그리고 성부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일깨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전례 거행 자체로 받게 되는 다른 은총들과, 그에 따라 차후에 나타날 결과인 새로운 생명의 열매를 받기 위한 전제가 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기시키신다

 

1099 성령과 교회는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활동을 드러내기 위하여 함께 일한다. 전례는 특히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고 다른 성사들 안에서는 유비적으로, 구원의 신비를 기념한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살아 있는 ‘기억’이시다.16)

 

1100 하느님의 말씀.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아들이고 실천하도록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 하심으로써, 전례를 거행하는 회중에게 먼저 구원 사건의 의미를 상기시키신다.

 

성서는 전례 거행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독서들을 봉독하고 강론으로 해설하고 시편을 노래하며, 성서의 영감과 감동에서 전례의 간구와 기도와 성가가 울려 퍼지고, 또한 전례 행위와 표징들이 성서에서 그 의미를 받기 때문이다.17)

 

1101 성령께서는 독서자들과 청중들에게 그 마음가짐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이해력을 주신다. 전례 거행의 골격을 이루는 언어와 행위와 상징들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신자들과 집전자에게 성부의 말씀이며 형상이신 그리스도와 생생한 관계를 맺게 하여, 전례 거행에서 듣고 묵상하고 행하는 것들의 의미를 그들 생활에 옮길 수 있게 하신다.

 

1102 “구원의 말씀은……신자들의 마음에 신앙을 키운다. 이 신앙으로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고 자라난다.”18) 하느님 말씀의 선포는 가르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계약을 위하여 동의와 투신으로 표현되는 신앙의 응답을 촉구한다. 성령께서는 또한 공동체에 신앙의 은총을 주시며, 신앙을 굳건하게 하고 자라게 하신다. 전례 모임은 무엇보다도 신앙 안에서 이루는 친교이다.

 

1103 기념(Anamnesis). 전례 거행은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늘 상기시킨다. “계시 경륜은 서로 긴밀히 결합된 행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말씀들은 업적들을 선포하며 그 안에 포함된 신비들을 밝혀 준다.”19) 성령께서는 말씀 전례로써 회중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들을 “상기시켜 주신다.” 전례 행위의 본질과 지역교회 예법의 전통에 따라 전례의 거행은 다소 확장된 기념 안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게 한다.” 이처럼 교회의 기억을 일깨우시는 성령께서는 감사와 찬미(Doxologia)를 불러일으키신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신다

 

1104 그리스도교 전례는 우리를 구원한 사건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고 현존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그 때마다 새롭게) 거행되는 것이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것은 기념 예식일 뿐이다. 전례 거행 때마다 유일한 신비를 실현하시는 성령께서 임하신다.

 

1105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는 사제가 성부께, 성화하시는 영을 보내시어 봉헌 제물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게 하시고 또 신자들이 그 살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느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이다.

 

1106 ‘기념’과 더불어 ‘성령 청원 기도’는 성사, 특히 성체성사 거행의 핵심이다.

 

어떻게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는지를 묻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모든 말과 생각을 초월하는 이 일을 이루신다고……. 주님께서 동정녀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스스로 육신을 취하신 것과 같이 이 일도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대답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20)

 

1107 성령의 변화시키는 힘은 전례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구원 신비의 완성을 재촉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다림과 희망 속에서 거룩하신 삼위의 완전한 친교를 실제로 미리 맛보게 하신다. 교회의 성령 청원 기도를 들어 주시는 성부께서 파견하신 성령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제부터 그들이 받을 상속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21)

 

성령의 친교

 

1108 모든 전례 행위에서 성령의 사명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의 포도나무 가지에 열매를 맺게 하는 수액과 같은 분이시다.22) 전례 안에서 성령과 교회의 가장 긴밀한 협동이 실현된다. 친교의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한결같이 머무르시며, 따라서 교회야말로 하느님의 흩어진 자녀들을 모으는 신적 친교의 위대한 성사이다. 전례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는 거룩하신 삼위와 이루는 친교, 형제와 이루는 친교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23)

 

1109 성령 청원 기도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회중이 이루는 친교의 완전한 효과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2고린 13,13)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해야 하며, 성찬 거행 이후까지도 그 효과를 지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부께, 성령을 보내 주시어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영적으로 변화하고, 교회의 일치에 관심을 갖고, 사랑의 증거와 실천을 통하여 교회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하느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도록 간구한다.

 

간추림

 

1110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교회의 전례 안에서 창조와 구원의 모든 복의 원천으로 찬미를 받으시고 흠숭을 받으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보내 주시고자 당신 아들을 통해 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다.

 

1111 전례에서 그리스도의 행위는 성사적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가 성령의 힘을 통해 전례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며, 교회인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그 안에서 성령께서 구원의 신비를 나누어 주시는 성사(표징과 도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며, 나그넷길에 있는 교회는 전례 행위를 통하여 천상의 전례를 미리 맛보고 참여하기 때문이다.

 

1112 성령께서 교회의 전례에서 수행하시는 사명은 회중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준비시키시고, 회중들의 신앙에 그리스도를 일깨우고 드러내 주시고, 변화시키는 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현존하게 하고 실현시키시며, 교회 안에서 친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제2절 파스카 신비와 교회의 성사

 

1113 교회의 모든 전례 생활은 성찬의 희생 제사와 다른 성사들을 구심점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24)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 곧,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가 있다.25) 제2절에서는 교회의 이러한 칠성사의 공통점을 교리적 관점에서 다룬다. 성사 거행의 공통점은 제2장에서 설명할 것이며, 각 성사의 고유한 면은 제2부의 주제가 될 것이다.

 

I. 그리스도의 성사

 

1114 우리는 “성서의 가르침과 사도 전승과……교부들의 일치된 의견을 충실히 받아들여”,26) “신약의 성사들이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27)고 고백한다.

 

1115 예수님의 나자렛 생활과 공생활 동안 그분의 말씀과 행위는 이미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가 지닌 능력을 미리 보여 주었으며,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교회에게 주어질 것을 예고하고 준비하였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드러내는 신비들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하여 성사 안에서 나누어 주시는 것의 기초가 된다. “우리 구세주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분의 성사들로 넘어갔기”28) 때문이다.

 

1116 성사들은 언제나 살아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29)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행위이다. 성사들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걸작’이다.

 

II. 교회의 성사

 

1117 “모든 진리로”(요한 16,13) 인도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교회는 그리스도께 받은 이 보화를 점차 알아보게 되었고, 하느님의 신비들을 맡은 충실한 관리자로서,30) 성서의 정경과 신앙교리에 대하여 그랬듯이, 이 보화의 분배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하였다. 이처럼 교회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신이 거행하는 전례들 가운데 엄밀한 의미에서 주님께서 세우신 성사는 일곱 가지가 있다는 것을 식별하게 되었다.

 

1118 성사는 ‘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 ‘교회의’ 성사이다. 성사가 ‘교회를 통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교회가 그 안에서 성령의 파견으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사들은 특히 성체성사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친교의 신비를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나누어 주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것이며, “교회를 이루는 성사”31) 이다.

 

1119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오직 하나의 신비체”32)를 이루는 교회는, 성사 안에서 “유기적 구조”33)를 지닌 ‘사제 공동체’로서 활동한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사제적 백성은 전례를 거행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편 어떤 신자들은 성품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다.”34)

 

1120 서품(敍品) 직무 또는 “직무 사제직”35)은 세례로 받은 보편 사제직에 봉사한다. 서품 직무는 성사들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활동하고 계심을 보증한다. 성부께서 강생하신 성자께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사도들에게 위임되었으며, 사도들을 통하여 그 후계자들에게 위임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일하도록 그분의 성령을 받는다.36) 이처럼 서품 직무는 사도들이 말하고 행한 것과 전례 행위를 연결하는 성사적인 끈이며, 사도들을 통하여 전례 행위를 성사의 근원이며 설립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말하고 행하신 것과 연결하는 끈이기도 하다.

 

1121 세례, 견진, 성품 이 세 성사는 성사의 은총뿐 아니라 성사의 인호(印號), 곧 ‘인장’을 새겨 준다. 이 인호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각기 다른 신분과 역할에 따라 교회의 지체를 이룬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교회와 하나 되는 이 동화(同化:configuratio)는 결코 소멸될 수 없는 것이다.37) 그리스도인 안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이 동화는 은총을 받기 위한 여건이고, 하느님의 보호에 대한 약속과 보증이며, 하느님 예배와 교회 봉사에 대한 소명이다. 그러므로 이 성사들은 결코 다시 받을 수 없다.

 

III. 신앙의 성사

 

1122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루가 24,47) 선포하도록 사도들을 파견하셨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마태 28,19). 성사는 하느님의 말씀과 이 말씀에 대한 동의인 신앙을 통해서 준비되는 것이기에, 세례를 주는 사명, 곧 성사들을 거행하는 사명은 복음 전파의 사명에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모이며……말씀의 선포가 성사 집전 그 자체에 필요하다. 성사는 모두 신앙의 성사이며, 신앙은 말씀에서 생기고 자라나기 때문이다.38)

 

1123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한다.”39)

 

1124 교회의 신앙은 그 신앙에 초대된 신자들의 신앙에 앞선다. 교회는 성사를 거행하면서 사도들에게서 받은 신앙을 고백한다. 그래서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또는 5세기 아퀴탠의 프로스페르가 말한 “기도의 법칙은 신앙의 법칙을 세운다.”)40)는 옛 격언이 생긴 것이다.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이며, 교회는 자신이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 전례는 살아 있는 성전(聖傳)을 구성하는 요소이다.41)

 

1125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성사 예식도 사제나 공동체가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조작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교회의 최고 권위자도 전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오로지 신앙에 순종하고 전례의 신비를 경건하게 존중하는 가운데 전례를 개정할 수 있다.

 

1126 한편, 성사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일치를 표현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에 기도하는 법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 회복을 위한 대화에서 근본 기준의 하나이다.42)

 

IV. 구원의 성사

 

1127 신앙 안에서 정당하게 거행된 성사는 그 성사가 의미하는 은총을 준다.43) 성사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유효하다. 세례를 주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고, 성사가 의미하는 은총을 주시기 위해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 성부께서는 각 성사의 성령 청원 기도에서 성령의 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당신 성자의 교회가 바치는 기도를 늘 들어 주신다. 마치 불이 자기에게 닿는 모든 것을 태워 불로 변화시키듯이 성령께서는 당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생명으로 변화시키신다.

 

1128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44) 성사들은 ‘사효적으로’(ex opere operato :‘성사 거행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진다. 곧, 단 한 번에 영원히 성취된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으로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성사는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45) 성사가 교회의 의향에 따라 거행되면 집전자의 개인적인 성덕과 관계없이 그리스도와 그분 성령의 힘이 성사 안에서 성사를 통하여 작용한다. 그렇지만 성사가 맺는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다.

 

1129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말한다.46) ‘성사의 은총’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총이며, 각 성사에 고유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성자와 같아지게 함으로써 치유하고 변화시키신다. 성사 생활의 효과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들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47)

 

V. 영원한 생명의 성사

 

1130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때까지”(1고린 15,28) 주님의 신비를 기념한다. 전례는 사도 시대부터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의 “마라나 타”(Marana tha! 주님 오소서!, 1고린 16,22)라는 부르짖음을 통해서 그 완성을 향하여 인도되어 간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기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월절이 하느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나는 너희와 함께 이 과월절 음식을 먹는 것이 내 간절한 소원이었다”(루가 22,15-16). 교회는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면서”(디도 2,13) 그리스도의 성사들 안에서 자신의 상속에 대한 보증을 받으며, 이미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17.20)

 

토마스 성인은 성사의 표징이 가지는 서로 다른 여러 차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성사는 전에 있었던 일, 곧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표징이다. 성사는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우리 안에 현재에 이루어지는 일, 곧 은총을 보여 준다. 성사는 수난이 예표하는 것, 곧 장차 나타날 영광을 예고한다.”48)

 

간추림

 

1131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의 유효한 표징들로서, 이 표징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베풀어진다. 성사 거행의 가시적인 예식은 각 성사에 고유한 은총을 나타내며 이를 실현한다. 성사는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는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

 

1132 교회는 세례 사제직(보편 사제직)과 성품 사제직(직무 사제직)으로 구성된 사제적 공동체로서 성사들을 거행한다.

 

1133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잘 준비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신앙을 통하여, 성사에 참여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신다. 그럴 때 성사는 신앙을 굳건하게 하고 표현한다.

 

1134 성사 생활의 열매는 개인적이며 동시에 교회적이다. 한편으로 신자 개개인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한 삶을, 다른 한편으로 교회에게는 사랑과 증거의 사명에서 성장을 이루어 준다.

 

 

 

제 2 장 파스카 신비의 성사적 거행

 

1135 전례에 관한 교리교육은 먼저 성사의 경륜을 이해하도록 해 준다(제1장). 이러한 이해로 성사 거행의 새로움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장(제2장)에서는 교회의 성사 거행을 다룬다. 전례 전통의 다양성 안에서 칠성사의 거행에 공통된 면들을 살펴보고, 각 성사의 고유한 부분들은 나중에 소개할 것이다. 성사 거행에 관한 이 기본 교리교육은 신자들의 다음과 같은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 누가 거행하는가?

- 어떻게 거행하는가?

- 언제 거행하는가?

- 어디에서 거행하는가?

 

제1절 교회의 전례 거행

 

I. 누가 거행하는가?

 

1136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의 ‘행위’이다. 이 세상에서 표징들이 암시하는 전례를 거행하는 사람들은 이미 천상 전례에 참여하고 있다. 그 곳의 전례는 충만한 친교와 축제의 거행이다.

'교리(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 문   (0) 2009.09.29
제 4 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0) 2009.09.28
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   (0) 2009.09.26
제 1 편 신앙 고백  (0) 2009.09.24
가톨릭4대교리 (四大敎理)   (0) 200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