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2558 “신앙의 신비는 위대하다." 교회는 사도 신경에서 신앙의 신비를 고백하며(제1편), 성사 전례 중에 이를 거행하여(제2편), 신자들의 삶이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한다(제3편).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신비를 믿고 거행하며, 또한 살아 계시는 참 하느님과 맺는 생생하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 신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관계가 바로 기도이다.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저에게는 기도가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1)
하느님의 선물인 기도
2559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2)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 우리의 교만과 우리 자신의 원의라는 고자세에서 하는 가, 아니면 “깊은 구렁 속에서”(시편 130,1) 뉘우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가? 겸손한 사람은 드높여진다.3) 겸손은 기도의 초석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로마 8,26). 겸손은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인간은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기”4) 때문이다.
2560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요한 4,10) 우리가 물을 길으러 가는 우물가, 바로 그 곳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놀랍게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시려고 우물가로 나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시고, 마실 물을 달라고 우리에게 청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목말라하신다. 예수님의 청은 우리를 갈망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목마름에서 나온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기도는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목말라하기를 갈망하신다.5)
2561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역설적으로 우리의 청원 기도는 하나의 응답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다. “나의 백성은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예레 2,13). 청원 기도는 무상의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응답이며,6) 외아들의 목마름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찬 응답이다.7)
계약인 기도
2562 인간의 기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기도를 드리는 표현 수단이 어떠한 것이든(몸짓이든 말이든), 온몸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가 솟아 나오는 곳을 가리킬 때, 성서는 때때로 그 곳이 영혼이나 정신이라고 하지만, 마음이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천 번 이상). 마음이 기도하는 것이다. 마음이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기도의 표현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2563 마음은 내가 존재하고 내가 머무는 거처(셈족이나 성서의 표현으로는 ‘내가 내려가는 곳’)이다. 마음은 우리의 이성이나 타인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리의 숨겨진 중심이다. 그러기에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만이 마음을 살피고 감지하실 수 있다. 마음은 우리의 심리적 성향의 가장 깊은 곳이기에, 결단을 내리는 자리이다. 마음은 우리가 삶이나 죽음을 선택하는 곳, 바로 진리의 자리이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은 서로가 만나는 자리이며, 계약이 체결되는 자리이다.
2564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 관계이다. 기도는 하느님의 행위이며 인간의 행위이다. 곧, 기도는 성령과 우리에게서 솟아나서, 사람이 되신 성자의 인간적인 의지와 결합되어 온전히 성부께 향한다.
친교인 기도
2565 신약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령과 맺는 생생한 관계이다. 하늘 나라의 은총이란 “거룩하고 고귀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이다.”8)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란 평소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생활은 언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9) 기도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확장되어 가는 그만큼, 그리스도다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의 차원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차원이다.
제 1 장 기도에 대한 계시
기도의 보편적 소명
2566 인간은 하느님을 찾는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모든 피조물을 무(無)에서 유(有)로 불러 내신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쓴”1) 인간은, 천사들 다음으로, “온 땅에 주님의 이름 어이 이리 크신지”2) 알아볼 수 있다. 죄 때문에 하느님과 비슷함을 잃어버린 뒤에도,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존재하도록 부르시는 분께 대한 갈망을 간직하고 있다. 모든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추구를 입증해 준다.3)
2567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부르신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잊거나 또는 창조주의 면전에서 멀리 숨더라도, 자신의 우상을 좇거나 또는 자기를 버렸다고 하느님을 비난하더라도, 살아 계신 참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기도의 신비로운 만남으로 끊임없이 부르신다. 기도에서, 성실하신 하느님의 이 사랑의 행위는 언제나 앞서는 것이요, 인간의 행위는 언제나 이 사랑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점차 당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에게 차츰 인간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심에 따라,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에게 하는 호소, 상호간에 맺어지는 계약이 되는 것이다. 말과 행위를 통하여, 이 계약의 드라마는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이 드라마는 구원의 역사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제1절 구약성서에 나타난 기도
2568 구약성서에 나타난 기도에 대한 계시는, 인간의 타락과 그 속량 사이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첫 자녀에게 탄식조로 “너 어디 있느냐?……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창세 3,9.13) 하신 질문과, 외아들께서 세상에 오시면서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7)4) 하신 대답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리하여 기도는 인간의 역사와 관련되기에 이르렀고, 역사의 사건들 속에서 인간이 하느님과 맺게 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창조 ─ 기도의 원천
2569 기도는 먼저 창조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작된다. 창세기의 첫 아홉 장에는 아벨이 양 떼 가운데에서 맏배를 봉헌한 일,5) 에노스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한 일,6)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과7) 같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노아의 번제물은, 그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를 통하여 만물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8) 이는 그의 마음이 올바르고 청렴하며, 그가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기”(창세 6,9) 때문이다. 모든 종교의 수많은 의인들이 이 같은 기도를 구현하였다.
살아 있는 존재들과 맺으신 불변의 계약을 통하여,9)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도할 것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하셨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기도가 계시된 것은 특히 우리의 성조 아브라함부터이다.
약속, 믿음의 기도
2570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자, 그는 “주님께서 분부하시는 대로”(창세 12,4) 바로 길을 떠난다. 그의 마음은 전적으로 “말씀을 따랐으며”, 그는 순종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하는 마음의 귀 기울임이 기도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말은 부수적인 요소이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먼저 행동으로 표현된다. 말이 없는 사람 아브라함은 머무는 곳마다 주님께 제단을 쌓는다. 나중에야 비로소 말로 표현된 그의 첫 기도를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 기도는 실현될 것 같지 않은 하느님의 약속을 그분께 상기시켜 드리는 은근한 탄식이다.10) 이렇게 처음부터, 기도의 극적인 일면, 곧 하느님의 성실성을 과연 믿어야 하느냐 하는 믿음의 시련이 나타난다.
2571 하느님을 믿으며,11)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으로 살아가던12) 성조는 신비로운 손님을 자신의 천막에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므레에서 한 이 훌륭한 접대는 바로 참된 ‘약속의 아들’의 탄생 예고에 대한 전조이다.13) 이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 보이셨으니, 아브라함의 마음도 사람들을 동정하시는 주님과 일치하였고, 대담한 신뢰로써 그들을 위해 감히 전구한다.14)
257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최대한으로 정화하시고자, 그에게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신”(히브 11,17)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약해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을 손수 마련하시고”(창세 22,8), “하느님께서 죽었던 사람들까지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히브 11,19). 이리하여 믿는 이들의 아버지가 된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실 성부를 닮았다.15) 기도는 인간에게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 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강렬한 사랑에 참여하도록 해 준다.16)
2573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과 당신 약속을 갱신하신다.17) 야곱은 그의 형 에사오와 맞서기 전에 신비로운 ‘어떤 분’과 밤새도록 싸웠는데, 그분은 그 싸움에서 자신의 이름 밝히기를 거절했다. 그러나 동틀 무렵 그분은 떠나기 전에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교회의 영적 전승은 이 이야기를 기도의 상징으로, 곧 신앙의 싸움과 끈기의 승리로 이해해 왔다.18)
모세, 중개자의 기도
2574 약속이 실현되기 시작할 무렵(파스카, 출애굽, 율법 수여와 계약 체결), 모세의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1디모 2,5)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전구의 놀라운 표상이 된다.
2575 여기에서도 또한 하느님께서 먼저 행동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신다.19) 이 사건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영적 전승에서 기도에 대한 원초적 표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부르신 것은, 당신께서 인간이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을 계시하시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하지는 않으시며, 인간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하지도 않으신다. 곧,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어 당신 자비의 구원 사업에 참여시키려고 그를 파견하신다. 이 사명에서 하느님께서는 간청하시는 분과도 같으며, 모세는 오랜 줄다리기 끝에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는 이 대화를 통해서 모세는 기도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곧, 모세는 회피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며, 특히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형언할 수 없는 이름을 알려 주시는데, 이 이름은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통해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2576 드디어 “주님께서는 마치 친구끼리 말을 주고받듯이 얼굴을 마주 대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출애 33,11). 모세의 기도는 전형적인 관상 기도이다. 이 기도 덕택으로 하느님의 종은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게 된다. 모세는 주님과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산에 올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탄원하였으며 내려와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 주고 그들을 이끌었다. “나는 나의 온 집을 그에게 맡겼다. 내가 모세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해 준다”(민수 12,7-8). “모세는 실상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고,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민수 12,3).
2577 성실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과20) 맺은 이 친밀함으로 모세는 그의 전구를 위한 용기와 항구심을 얻는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 몫으로 삼으신 백성을 위하여 기도한다. 아말렉족과 싸우는 동안21) 또는 미리암의 병이 낫도록22) 모세는 이미 전구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성이 변절한 뒤에 모세는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던져”(시편 105[106],23) 하느님 앞에 나아갔다.23) 하느님과 싸우는 모세의 기도(전구도 하나의 신비로운 싸움이다.)는 유다 민족이나 교회의 위대한 전구자들에게 담대함을 심어 준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며 공정하시고 성실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억지를 부리지 않으시며, 당신께서 전에 손수 하신 놀라운 일들을 반드시 기억하신다. 이는 하느님의 영광과 관련되는 문제로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지닌 이 백성을 저버릴 수 없으시다.
다윗, 임금의 기도
2578 하느님 백성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장막, 계약궤, 그리고 나중에는 성전(聖殿)으로 번져 나가게 된다. 주로 백성의 지도자들, 곧 목자들과 예언자들이 백성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린 사무엘은 자기 어머니 한나에게서 “주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24) 배웠을 것이며, 사제 엘리에게서는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배웠던 것이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10). 사무엘도 기도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 “나도 너희를 위해 기도하리라. 기도하지 않는 죄를 주님께 짓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나는 너희에게 무엇이 좋고 바른 일인지를 가르쳐 주리라”(1사무 12,23).
2579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이었으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또한 그 백성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목자였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그의 순명과 찬미와 참회는 백성에게 기도의 모범이 된다. 하느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로서 다윗이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충실한 믿음이며,25) 유일한 임금이시고 주님이신 분께 드리는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신뢰였다. 성령의 감도를 받은 다윗은, 시편에 나타나듯이,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기도의 첫 예언자이다. 참 메시아이시고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다윗이 드렸던 기도의 의미를 드러내고 완성시켜 줄 것이다.
2580 다윗이 건립하고자 했던 기도의 집, 곧 예루살렘 성전은 그의 아들 솔로몬의 업적이 된다. 성전 봉헌 때 바치는 기도는26) 하느님의 약속과 계약, 당신 백성 가운데 현존하는 하느님 이름의 엄청난 위력, 이집트 탈출의 놀라운 업적에 대한 회상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왕은 하늘을 향하여 손을 쳐들고 자기 자신과 온 백성을 위하여, 미래의 후손들을 위하여, 그들의 죄에 대한 용서와 매일의 필요를 위하여, 모든 나라가 주님께서 유일하신 하느님이심을 알고, 백성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께 향하도록 기도한다.
엘리야, 예언자들과 마음의 회개
2581 성전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장소가 되어야 했다. 곧, 순례, 축제, 희생 제사, 저녁 제사, 향, ‘제사 음식’과 같이, 지극히 높으시고 아주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나타내는 이 모든 표징들은, 기도하라는 호소이자 기도로 이끄는 길이었다. 그러나 흔히 형식주의는 백성을 지나치게 외적인 예배로 이끌어 가곤 했다. 그리하여 신앙 교육과 마음의 회개가 필요하였다. 이것이 귀양살이 이전과 이후의 예언자들이 맡은 사명이었다.
2582 엘리야는 예언자들의 아버지이며 주님을 찾는 족속,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이들의 아버지였다.27) “주님께서는 나의 하느님이시다.”라는 의미를 지닌 그의 이름은, 가르멜 산에서 올린 그의 기도를 향하여 응답하는 백성의 부르짖음을 예고한다.28)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촉구하려고 엘리야를 회상시킨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야고 5,16).29)
2583 그릿 개울가에서 숨어 지내는 동안 자비를 깨달은 엘리야는 사렙다 마을의 과부에게 하느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르친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과부의 믿음을 확고하게 한다. 하느님께서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신 것이다.30)
가르멜 산에서 드린 제사는 하느님 백성의 믿음을 시험하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엘리야가 기도를 드리자, “한낮이 지나 저녁 제사 시간에” 주님의 불이 제물을 태운다. “응답해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바로 엘리야가 했던 이 말은 동방 교회 감사기도의 성령 청원 기도에서 되풀이되고 있다.31)
끝으로, 살아 계신 참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던 곳을 향하여 사막의 길을 가던 엘리야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신비로운 모습의 하느님께서 “지나가실” 때까지 “동굴 속에” 몸을 숨겼다.32) 그러나 그들이 찾던 하느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변모의 산에서야 비로소 당신 얼굴을 드러내실 것이다.3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본다.34)
2584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단둘이 있음으로써” 그들의 사명을 위한 빛과 힘을 얻는다. 그들의 기도는 불충한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때로는 하느님과 따져 보기도 하고 하느님께 탄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역사의 주인이신 구세주 하느님의 개입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중개의 기도이다.35)
시편, 회중의 기도
2585 다윗 이래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성서는, 자기 자신과 다른 이를 위한 깊이 있는 기도문들을 수록하고 있다.36) 시편들은 점차 다섯 권으로 모아 놓은 전집이 되었다. 시편(또는 ‘찬미가’)은 구약성서에 수록된 기도의 걸작이다.
2586 시편은 큰 축일 때 예루살렘에, 그리고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인 하느님 백성 곧 회중의 기도를 표현하며 풍요롭게 한다. 이 기도는 개인적이며 동시에 공동체적이다. 이 기도는, 기도드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관련된다. 시편은 ‘거룩한 땅’에서 또 유민(流民: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에서 바치지만, 만민을 다 포용한다. 이 기도는 과거의 구원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역사의 종말에까지 미친다. 이 기도는 이미 실현된 하느님의 약속들을 상기시키며, 그 약속들을 결정적으로 실현하실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리스도께서 기도로 바치시고 그분 안에서 완성된 시편은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핵심으로 머물러 있다.37)
2587 시편집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기도가 되는 책이다. 구약의 다른 책들에서 “말씀들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업적들을 선포하며 그 안에 포함된 신비들을 밝혀 준다.”38) 그러나 시편 작가는 시를 지어 하느님께 노래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밝힌다. 하느님의 일을 추진하시는 분도, 인간의 응답을 불러일으키시는 분도 같은 성령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가지를 통합시키실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가르쳐 준다.
2588 시편 기도에 담겨진 다양한 표현들은 성전의 전례 안에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 구체화된 것들이다. 시편은 찬미가, 탄식 기도나 감사, 개인이나 공동체의 간구, 왕의 노래 또는 순례의 노래, 지혜의 명상 등을 담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한결같이 하느님 백성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과 시편 작가가 인생살이에서 체험한 인간적 상황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시편은 과거의 사건을 반영할 수도 있으나, 참으로 간결한 기도이기 때문에, 신분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바칠 수 있는 진실한 기도이다.
2589 시편들 안에는 일관된 특징들이 발견된다. 기도의 소박함과 자발성, 피조물 안의 모든 좋은 것을 통하여, 그리고 그것들과 더불어 드러나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 또한 주님을 더 사랑함으로써 많은 원수들과 유혹의 표적이 된 믿는 이들의 괴로운 처지, 그리고 성실하신 주님께서 행하실 것을 기다리며 그분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분의 뜻에 맡겨 드리는 의탁의 자세 등이 시편 전체를 일관한다. 시편의 기도는 언제나 찬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때문에 ‘찬미가’라는 이 책의 이름은, 시편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내용과 참으로 어울린다. 회중의 예배를 위해 모아 놓은 시편집은 우리를 기도로 초대하며, 우리가 “할렐루-야!”(알렐루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하는 노래로 그 초대에 응답하게 한다.
시편보다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윗 자신이 아름답게 말해 줍니다. “주님을 찬양하라, 노래도 좋을씨고. 하느님 노래하라, 찬미도 고울씨고.” 그렇습니다. 시편은 백성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이고,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이며, 회중이 드리는 찬미의 노래이고, 모든 이가 치는 손뼉입니다. 보편적인 교훈이고, 교회의 목소리요, 노래로 바치는 신앙 고백입니다.…….39)
간추림
2590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40)
2591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을 당신과 신비로운 만남으로 끊임없이 부르신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부르는 호소로서, 구원 역사 전체에 함께하고 있다.
2592 아브라함과 야곱의 기도는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꾸준히 신뢰하는 것으로, 약속된 승리를 확신하기 위하여 겪어야 하는 신앙의 싸움으로 나타난다.
2593 모세의 기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부르시는 것에 대한 응답이다. 모세의 기도는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기도를 예시한다.
2594 하느님 백성의 기도는, 하느님의 장막, 계약궤, 성전과 같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목자들, 특히 다윗 왕과 예언자들의 지도 아래 꽃을 피운다.
2595 예언자들은 마음의 회개를 호소한다. 그들은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얼굴을 열렬히 찾으며 백성을 위하여 간구한다.
2596 시편은 구약성서에서 기도의 걸작을 이룬다. 시편은 뗄 수 없는 두 가지 요소, 곧 개인적 요소와 공동체적 요소를 보여 준다. 시편은 이미 이루어진 하느님의 약속을 기념하며 메시아의 도래를 희망함으로써, 역사의 모든 차원에까지 미친다.
2597 그리스도께서 기도로 바치시고 그분 안에서 완성된 시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근본적이고 불변하는 요소이다. 시편은 계층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가 드리기에 적합한 기도이다.
제2절 때가 찼을 때
2598 기도의 드라마는,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완전히 드러났다. 복음서 안에서 주님의 증인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들을 통하여 그분의 기도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에 다가가듯 거룩하신 주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곧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들어 주시는지를 깨닫도록 힘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
2599 동정녀의 아들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또한 당신께서 지니신 인간 심성에 따라 기도하는 법을 배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께서 마련하신 “큰 일”들을 모두 마음 속에 간직하시고 묵상하시던41) 당신 어머니에게서 기도문을 배우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과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당신 동포들이 기도할 때 썼던 말과 운율에 젖어 기도를 배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벌써 열두 살 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라고 암시하셨듯이, 좀더 신비로운 원천에서 솟아 나온 기도였다. 바로 여기에서 때가 차 드리신 기도의 새로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던 자녀다운 기도를, 마침내 사람이 되신 외아들께서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신 것이다.
2600 루가 복음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성령의 작용과 기도의 의미를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이행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앞두고 기도하신다. 당신의 세례와42) 영광스러운 변모43) 때에 성부께서 당신에 대해 증언해 주시기에 앞서, 그리고 당신의 수난을 통해 성부께서 세우신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시기에 앞서44) 먼저 기도하신다. 사도들이 부여받은 임무를 시작하려던 결정적인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기도하신다. 곧,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부르시기 전에,45) 베드로가 당신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전에,46) 또한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신앙이 유혹으로 약해지지 않도록47)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다. 성부께서 성취하라고 명하신 구원 활동을 펼치시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드리는 기도는,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지니신 뜻을 겸손과 신뢰로써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의 뜻에 맡겨 드리는 기도이다.
2601 “예수께서 하루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하나가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가 11,1). 그리스도의 제자는 기도하시는 스승을 보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는 기도하시는 스승에게서 기도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자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성부께 기도드리는 것을 배우게 된다.
2602 예수님께서는 되도록이면 밤에, 홀로, 산으로 물러가셔서 자주 기도하셨다.48)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심으로써 인류를 완전히 떠맡으셨기 때문에, 기도에서도 사람들을 떠맡고 계시며, 당신 자신을 성부께 바치심으로써 그들을 또한 성부께 봉헌하신다. “육체를 취하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간적인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형제들”이49) 겪는 모든 일에 참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나약함에서 해방시키시려고 그들의 나약함을 함께 겪으셨다.50) 바로 이를 위하여 성부께서는 그분을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들은 그분께서 ‘은밀하게 드리시던’ 기도의 가시적인 표현이다.
2603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드리셨던 두 편의 기도를 아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기도는 각각 감사로 시작된다. 첫째 기도에서,51) 예수님께서는 성부를, 하늘 나라의 신비를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참행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분으로 고백하시며, 성부를 그러한 분으로 알아뵙고 성부께 찬미를 드리신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고 예수님께서 외치신 감탄사는 그분의 깊은 마음 속을 드러내며, 성부의 뜻에 순종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외침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신 말씀을 반향하는 것이요, 또한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던 중에 성부께 드리신 말씀의 전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기도는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지니신 충만한 사랑의 마음으로 성부의 “심오한 뜻”을52)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의로 집약된다.
2604 둘째 기도는 성 요한 복음사가가53) 라자로의 부활 사건 전에 기술하고 있다. 그 사건은 감사의 기도로 시작된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에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예수님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곧 이렇게 덧붙이신다. “언제나 제 청을 들어 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청하고 계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감사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선물을 통해 당신 자신도 함께 주시는 분과 일치하시는 것이다. 베풀어진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더 소중하다. 선사하시는 성부께서 곧 ‘보화’이시며, 성부의 아들의 마음은 그분 안에 있다. 선물은 “곁들여”54)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드리신 기도’는55) 구원 경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 기도에 대해서는 제1부의 끝에 가서 깊이 살펴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기도는 언제나 현재 시점에서 바치시는 우리 대사제의 기도를 알려 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주님의 기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내용을 담고 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2605 성부의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실 때가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바치시는 기도의 심오함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붙잡히시기 전에 바치신 기도(“아버지,……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루가 22,42)에서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들을 통해서도, 기도하는 것과 당신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동일한 행동임을 보여 주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43),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목마르다!”(요한 19,28),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56)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리고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실 때에도,57) 예수님의 기도와 자기 증여는 동일하다.
2606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인류가 지나온 모든 시대의 온갖 고뇌, 그리고 구원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청원과 전구는 강생하신 말씀의 이 ‘큰 소리’ 속에 합류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시고, 모든 희망을 뛰어넘어, 당신 아드님을 부활시키심으로써 그것들을 모두 들어 주신다. 이렇게 해서 창조와 구원의 경륜을 통해 기도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완성된다. 시편집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드라마의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영원한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눈앞에 두고, 성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내게 청하여라. 나는 민족들을 네 유산으로, 땅의 맨 끝까지 네 소유로 주리라”(시편 2,7-8).58)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기도가 어떻게 구원의 승리를 가져다 주는지를 극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 5,7-9).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다
2607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벌써 기도를 가르치신다.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께 다다르는 길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서 그대로 우리를 받아들이시어, 점차적으로 우리를 성부께 인도해 가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군중을 뒤돌아보시며, 그들이 구약의 계약을 통하여 이미 기도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에서 출발하여, 다가올 하늘 나라의 새로움에 마음을 열게 하신다. 그 다음에 그 새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비유로 알려 주신다. 끝으로, 당신 교회에서 기도의 교사들이 되어야 할 제자들에게는 아버지와 성령께 대해 숨김 없이 말씀해 주신다.
2608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마음의 회개를 강조하셨다.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여라,59)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여라,60) “골방에서”(마태 6,6)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많은 말을 되풀이하지 마라,61) 기도할 때 마음 속으로부터 용서하여라,62)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늘 나라를 구하여라63) 하셨다. 이 같은 회개는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께 향하는 것이며, 또 자녀다운 것이다.
2609 이처럼 회개하기로 결심한 마음은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믿음은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을 초월하여 자녀로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믿음은 사랑하는 아들께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문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찾아라.”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 하고 요구하실 수 있다.64)
2610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고 아버지의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감사를 드리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르쳐 주신다.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마르 11,24). 기도의 힘이 이와 같다. 곧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65)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마르 9,23).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의 “믿음이 없음”(마르 6,6)과 제자들의 믿음이 약함을66) 보시고 슬퍼하신 만큼, 로마 사람 백인 대장과67) 가나안 여자의68) 크나큰 믿음을 목격하시고는 경탄하신다.
2611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믿음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다.69)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계획에 협력하려는 마음을 지니라고 제자들에게 촉구하신다.70)
2612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므로”(마르 1,15),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음을 가질 것과, 깨어 있을 것을 호소하신다. 제자는 기도 중에, 비천하게 사람이 되신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을 기억하고,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희망하면서, ‘언제나 계시며, 오시는 주님’을 깨어 기다린다.71) 스승과 일치하여 바치는 제자들의 기도는 하나의 싸움이다. 깨어 기도함으로써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72)
2613 루가 성인은 기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세 가지 비유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첫 번째 비유, 곧 “친구의 청을 들어 주는 사람의 비유”는73)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라고 촉구한다.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고, 특히 모든 선물을 가지고 계시는 성령을 주실 것이다.
두 번째 비유, 곧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는74) 기도의 특성 중 하나에 중점을 둔 것으로, 믿음에 따르는 인내를 가지고서, “지치지 말고 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세 번째 비유, 곧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의 예화”는75) 기도하는 마음의 겸손에 관한 것이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회는 이 기도를 끊임없이 자신의 기도로 삼아 왔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yrie eleison!)
2614 예수님께서 성부께 드리신 기도의 신비를 제자들에게 숨김 없이 밝혀 주신 것은, 당신께서 영광스러운 인성을 지닌 채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신 그 때에 제자들이 드리는 기도와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기도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다.76)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요한 14,6) 때문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제자들은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믿음은 사랑 안에서 그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게 되며,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안에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이 새 계약에 따라서, 우리의 청원이 허락되리라는 확신은 예수님의 기도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77)
2615 더 나아가서,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와 결합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진리의 성령이시다”(요한 14,16-17). 기도와 기도드리는 상황의 이 새로움은 예수님의 고별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78) 성령과 하나 되어 바치는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이루는 사랑의 친교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해 본 적이 없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요한 16,24).
예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신다
2616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드리는 기도를 공생활 동안에 이미,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권능을 앞당기는 징표들을 통해서 들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말로 표현되었거나(나병 환자,79) 야이로,80) 가나안 여자,81) 회개한 죄수82)), 또는 침묵 중에 표명되었던(중풍 환자를 떠메고 온 사람들,83) 예수님의 옷을 만진 하혈증을 앓는 여자,84) 죄 많은 여자의 눈물과 향유85)) 믿음의 기도들을 들어 주셨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9,27), 또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라며 탄식했던 소경들의 애원은,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의 전승 안에서 이렇게 인용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병을 치유해 주시거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당신께 애원하는 기도에 늘 응답해 주셨다.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의 기도가 지니고 있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을 훌륭하게 요약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사제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우리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또한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86)
동정 마리아의 기도
2617 마리아의 기도는 때가 차 오는 여명에 우리에게 알려진다. 하느님의 아들이 강생하시기 전에, 그리고 성령께서 세상에 강림하시기 전에, 그리스도의 잉태를 위한 주님 탄생 예고 때,8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형성하기 위한 성령 강림 때에88) 마리아께서 바치신 기도는 성부의 자비로운 계획에 탁월하게 협력하는 기도이다.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기다려오신 승낙은 하느님의 비천한 여종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능하신 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전 존재를 바쳐 응답하신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기도, 곧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셨으니, 우리도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되겠다는 기도이다.
2618 복음서는 마리아께서 믿음 안에서 어떻게 기도하고 전구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가나에서89)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혼인 잔치에 필요한 것을 당신의 아들에게 청하신다. 그런데 이 혼인 잔치는 또 다른 잔치, 곧 당신의 신부인 교회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몸과 피를 내주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상징한다. 그리고 새 계약이 맺어지는 시각에, 십자가 아래에서,90) 마리아께서는 ‘새 하와’로, ‘여인’으로, ‘살아 있는 이들의 참 어머니’로 받아들여진다.
2619 이런 까닭에, 라틴어로는 Magnificat, 비잔틴어로는 Megalunavr뛬n인, “성모의 노래”는91) 하느님의 어머니의 노래이자 교회의 노래이며, 시온의 딸의 노래이자 하느님의 새 백성의 노래이고, 구원 경륜 안에서 충만하게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의 노래이며, 우리 조상들에게,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언약하신 약속의 이행을 통해서 그 희망이 채워진 ‘가난한 사람들’의 노래이다.
간추림
2620 신약성서에서 기도의 완전한 본보기는 예수님의 자녀다운 기도에서 발견된다. 자주 고독 속에서 은밀히 행하신 예수님의 기도에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사랑으로 충만한 동의와, 기도가 받아들여지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들어 있다.
2621 예수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깨끗한 마음과 생생하고 꾸준한 믿음 그리고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촉구하시며,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청하라고 권고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드리는 기도를 친히 들어 주신다.
2622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와 ‘성모의 노래`’(Magnificat) 에 담겨 있는 동정 마리아의 기도는, 믿음을 통하여 당신의 전 존재를 아낌없이 바치는 특성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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