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namsarang 2009. 9. 27. 15:57

[사목일기]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임용환 신부(서울대교구 삼양동선교본당 주임)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사제 수품 때 정한 성경구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이 이 구절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품을 앞두고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왜 이 구절을 택했냐고 물으셨다. "어떤 일을 할 때 처음에는 좋게 나가다가 갈수록 처음과는 다르게 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 이유가 자신의 뜻이나 욕망을 죽이지 못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 구절을 택했다"고 말씀드렸다. "난 그렇게 살지 못했네"하고 추기경님이 말씀하셨다. 몰랐다. 그 때는 몰랐다. 추기경님의 그 말씀이 얼마나 깊은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내 뜻과 욕망을 죽이지 못해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 그런 나로 인해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 이제 어떻게 용서를 청해야 하는가?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이 성경구절대로 살아가야겠지, 내가 먼저 용서의 삶을 살아가야겠지.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이렇게 부족하고 나약한 결점투성이의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하고 받아들여야겠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노래했던 어느 시인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기보다는 용서를 청하는 삶을 살아야겠지.

 자신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노란 민들레꽃을 키웠던 '강아지 똥'이란 동화가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이야기도 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세상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때문이라는 말처럼 그래도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내어 주는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삶은 부활의 기쁨과 영광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은 그 숲속에서 말없이 죽어가는 많은 생명체들이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이 나를 내어 줄 수 있는,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삶이 되길 주님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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