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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대한민국 그 사람은 갔지만 그 사랑에 눈뜨다

namsarang 2009. 12. 8. 21:26

[오늘의 세상]

2009 대한민국 그 사람은 갔지만 그 사랑에 눈뜨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

장기기증 서약 역대 최다 규모
김수환 추기경 각막 기증 영향 기부도 활발… 성금도 4배 늘어

한 달 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전화가 걸려 왔다. 뇌사(腦死)판정을 받은 남편 임혁선(52)씨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아내의 전화였다.

"남편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했어요. 사고 3일 전에도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죽으면 꼭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아내는 흐느꼈다. 물류업에 종사하던 임씨는 5t 트럭을 몰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던 중이었다. 부산에 다다를 때쯤 차 지붕에서 물이 새자 그는 차를 세우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날 비가 내린 탓에 차 지붕은 미끄러웠고 임씨는 도로 위로 추락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다. 임씨는 각막 2개와 신장 2개, 간을 기증해 5명에게 새 생명을 안겨줬다. 연골과 인대 등 조직도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 기증, 수십 명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떠났다.

지난 2월 87세로 선종(善終)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 각막을 기증했다. 그 영향일까? 올해 대한민국은 '장기 기증'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7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코노스)는 이날까지 전국의 병원과 장기기증 단체에 기증 의사를 밝힌 희망자가 17만7063명으로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체 희망자 7만4841명의 2.4배나 되는 규모다.

코노스 관계자는 "김 추기경이 '앞 못 보는 이에게 빛을 보여주고 싶다'며 각막을 기증한 이후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했다. 김 추기경의 장기 기증 소식이 전해진 지난 2월 말 당시 일부 장기이식 등록기관에는 평소의 20∼30배에 달하는 인터넷 서약이 접수되고 군부대에서 기증 캠페인이 열리는 등 '생명 나눔' 열풍이 불었다.

장기기증과 함께 활발한 기부도 올해 대한민국을 따뜻하게 했다. 지난 3일 오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북지회 사무실에 30대 초반의 장애인 부부가 찾아왔다. 남편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지체장애인이었고, 아내는 언어장애로 말이 몹시 어눌했다. 부부는 손때 묻은 흰 봉투를 직원에게 건네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항상 도움을 받는 것에만 익숙했어요. 항상 받기만 해서 너무 고마워서 이제는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작은 마음이라도 나누고 싶어요. 저희는 기초생활수급자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조금을 아껴 조금씩 모았습니다." 봉투 안에는 1만원권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너무 적은 금액이라면서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 이들은 지난 3월에 결혼을 했고 아내는 현재 임신 7개월째라고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희망 2010 나눔캠페인' 시작 7일 만에 '사랑의 온도'가 7.5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랑의 온도 7.5도는 이 기간 모금목표인 2212억원의 7.5%인 166억4900여만원의 성금이 모인 것을 의미한다. 공동모금회 김효진 홍보실장은 "작년 같은 기간 성금은 45억원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기업들의 후원이 많아 모금 속도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