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12월의 편지

namsarang 2009. 12. 5. 16:43

[ESSAY]

12월의 편지

  • 이해인 수녀·시인
        ▲ 이해인 수녀·시인

함께 깨죽을 드시던 김수환 추기경님,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 옛 친구 윤영순…
모두 다 저세상으로 떠난 슬픔 속에
추모시 쓰느라 바빴던 한 해였습니다

12월이 되니 벌써 크리스마스카드들이 날아옵니다. 해마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 늘 초조했는데 올해는 오히려 느긋하게 웃을 수 있는 나를 봅니다. 이별의 슬픔과 몸의 아픔을 견디어 내며 '아직'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동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님의 병실에서 그분과 함께 깨죽을 먹은 후 내가 기도를 부탁했을 때, 하도 말을 길게 하시어 "힘드신데 좀 짧게 하시죠" 하니 "상대가 문인이라 나름대로 신경 좀 써서 하느라 그랬지!" 웃으며 대답하셨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린 꼭 한 반 해야 한다고 말했던 화가 김점선, 고운 카드와 스티커를 즐겨 선물했던 장영희 교수, 문병 와서 덕담을 해주던 옛 친구 윤영순…. 모두 다 저세상으로 떠난 슬픔 속에 추모시 쓰느라 바빴던 한 해였습니다.

1980년대 내가 돌보던 앳된 지원자들이 이번에 서원 25주년을 지내는 모습을 눈물 어린 감동 속에 지켜보면서 이만큼 오래 살았으니 이젠 떠나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습니다. 만날 적마다 "좀 어떠세요?" 하고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 이들에겐 단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 주춤할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암환자의 특성이기에 말입니다.

새벽에 문득 입에서 쓴맛을 느끼며 한 모금의 달콤한 주스를 그리워하고, 어느 순간엔 곁에 있는 종이 한 장 집기 싫은 무력증에 빠지고, 의사나 환자의 한마디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지고, 예측불허인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의기소침해지면서 '암환자의 고통은 설명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곤 합니다. 항암과 방사선치료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몸의 아픔 못지않은 마음의 아픔이 우울증으로 연결되는 일도 많은 듯합니다.

'명랑 투병'한다고 자부했으나 실은 나 역시 자신의 아픔 속에 갇혀 지내느라 마음의 여유가 그리 많진 않았습니다. '잘 참아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체면 때문에 통증의 정도가 7이면 5라고 슬쩍 내려서 대답한 일도 많습니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 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엔 담백하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전보다 더 웃고 다니는 내게 동료들은 무에 그리 좋으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답으로 들려주던 평범하지만 새로운 행복의 작은 비결이랄까요. 어쨌든 요즘 들어 특별히 노력하는 것 중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무엇을 달라는 청원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더 많이 하려 합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괴로움을 겪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가끔은 위로의 편지를 쓰고 양로원과 교도소를 방문하기도 하지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렇게까지 큰 도움을 주진 못할지라도 마음을 읽어주는 작은 위로자가 되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눔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삶이 매 순간마다 축제의 장으로 열리는 느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는 것도,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보는 것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얼마나 큰 감동인지 모릅니다. 수녀원 복도나 마당을 겨우 거닐다가 뒷산이나 바닷가 산책을 나갈 수 있을 적엔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이웃조차 왜 다들 그리 정겹게 여겨지는지! 최근에 읽은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화두처럼 뇌며 만나는 이들에게마다 '반가워요. 다 저의 일가친척 되시는군요!' 하는 사랑의 인사를 마음으로 건넵니다.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표현한 정현종 시인의 시집에서 발견한 '꽃시간'이란 예쁜 단어도 떠올리며 '그래 나는 걸음걸음 희망의 꽃시간을 만들어야 해' 다짐합니다.

셋째,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씁니다. 부탁받은 일들을 깜박 잊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가고, 다른 이의 신발을 내 것으로 착각해 한동안 신고 다니던 나를 오히려 웃음으로 이해해 준 식구들을 고마워하며 나도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는 아량을 배웁니다.

넷째,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흥분하기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 애씁니다.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적엔 '언젠가는 영원 속으로 사라질 순례자가 대체 이해 못 할 일은 무엇이며 용서 못 할 일은 무엇이냐'고 얼른 마음을 바꾸면 어둡던 마음에도 밝고 넓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천양희의 시 '지나간다'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