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우리동네 지명?

[6] 포천 축석(祝石)고개

namsarang 2009. 12. 18. 23:02

[수도권II] [우리동네 지명유래]

[6] 포천 축석(祝石)고개

     ▲ 축석고개 자락에 1988년 건립한‘포병용사
         김풍익 전투기념비’./권상은 기자 
         sekwon@chosun.com

효자가 돌에 빌어 아버지 병 고쳐

경기북부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43번 국도 의정부·포천 경계에는 '축석고개'가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한강과 임진강 어귀에 이르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줄기이기도 하다. 이 축석고개의 한자 표기는 '돌을 쌓았다'는 축석령(築石嶺)으로 알기 쉬우나 축석령(祝石嶺)이다. '돌에 빈 고개'라는 전설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포천문화원이 2006년 발간한 '포천의 지명유래집' 증보판에 따르면 300여년 전에 어룡리에 오백주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부친이 위독해 하늘에 간절히 빌었더니 "병을 고치려면 석청(깊은 산의 절벽이나 바위틈에 모여 있는 귀한 꿀)뿐이다"라는 계시를 듣게 됐다. 그러나 한겨울이라 하늘을 우러러보며 애만 태우고 있을 때 큰 벌이 날아와 인도하기에 따라와 다다른 곳이 지금의 축석고개였다고 한다.

그런데 큰 호랑이가 길을 가로막았다. "제발 내가 약을 구해드린 후에 잡아먹으라"고 애원을 했더니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만 남아 있었다. 벌이 바위틈으로 들어가자 하늘에 빌었더니 석청이 흘러나왔고, 덕분에 부친의 병을 완쾌시켰다고 한다. 처음에는 효자가 돌에 빌었다고 해서 '빈돌고개'라고 했는데 나중에 축석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축석고개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이 남침하자 김풍익 대대장이 이끄던 포병학교 교도2대대가 고개 밑에서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고, 김 대대장은 결사대를 조직해 야포를 끌고 나가 전차와 맞섰지만 모두 전사했다. 축석고개에는 당시 전사한 11명의 명단과 함께 '포병용사 김풍익 전투기념비'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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