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스텔라의 집을 이전하면서…

namsarang 2010. 1. 9. 22:55

[사도직 현장에서]

 

스텔라의 집을 이전하면서…


                                                     허 명 숙 수녀(발렌티나, 미혼양육모 그룹홈 스텔라의 집 원장)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 분 중 언어 장애를 가진 분이 계셨다. 설날과 추석날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에 찾아오시던 그분을 우리는 '배배 아저씨'라고 불렀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가 없는 배배 아저씨가 설날 우리 집에 오시면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불러 아저씨에게 세배를 하게 하셨고, 아저씨는 10원 짜리 동전을 한 주먹 가지고 오셔서 세뱃돈으로 나눠 주셨다. 배배 아저씨는 세배를 받으시면서 많은 덕담을 해주셨으나 우리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아버지가 '통역'(?)을 해주셨다.

 아버지와 배배 아저씨는 오랜 시간 서로 손짓을 하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많은 대화를 나누셨다. 그 당시 우리는 '아버지와 아저씨가 어떤 대화를 하시는 것일까? 아버지는 대체 아저씨가 하는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으실까?'하는 의문을 갖곤 했다.

 자원봉사자나 후원회원자들을 만나면서 지금은 예전에 아버지가 배배 아저씨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스텔라의 집을 찾아오는 봉사자와 후원자들은 언제나 남의 말을 들으려는 준비된 마음을 갖고 오는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는 것이다. 봉사자나 후원자들은 스텔라의 집 가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집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찾아오는 것 같다.

 1950~60년만 해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이들이 많았다. 또 행상을 다니는 사람도 많아 식사 시간에 밥상 앞에 객식구가 한 명 정도 더 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누가 밥을 얻어먹으러 오던지 어머니는 밥과 국, 김치를 넉넉히 차려 대접하셨다. 여름에는 펌프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 올려 함께 상에 올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 옆에 앉히시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그 당시 어르신들은 굳이 '봉사' 또는 '후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나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이를 보면 달려가서 받아 주었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었다. 또 이웃이 어려움에 처하면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삶이 몸에 배어 있었다.

 얼마 전 스텔라의 집이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해야 할 때 80살 된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로 받은 돈을 아껴 모았다며 후원금 80만 원을 들고 방문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아기들을 안거나 업어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 밖에도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많은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은 스텔라의 집 가족들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기꺼이 아기들의 언니ㆍ오빠ㆍ이모 또는 미혼모들의 친정 엄마가 되어 따뜻한 마음을 나줘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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