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노부부의 1박2일 천국여행

namsarang 2010. 1. 6. 12:32

[사도직 현장에서]

 

노부부의 1박2일 천국여행

         


                                       조미형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어떤 본당의 순교영성 강의가 있던 날이다. 강의 후 다과를 즐기며 교우들과 대화할 때 만난 한 자매님의 순한 미소는 첫눈에도 유리알처럼 투명해 보였다.

 자매님의 딸은 교리신학원을 졸업한 후 국내와 인도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딸이 선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데, 수도자가 되면 더 좋겠다"고 하는 자매님은 본당에서도 적지 않은 활동을 하셨다.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게 해주셨으니 저희도 주님 은혜에 보답해야죠"하는 자매님 모습엔 감사함이 묻어났다.

 자매님 부부는 여행을 자주하는 편이라고 했다. 뭐 그리 거창한 여행은 아니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 정도의 짧고 소박한 여행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부부는 사소한 것도 대화를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든 그것을 조율하거나 해결하는 과정을 공유한다. 여행지를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매님은 "여행지에서 여장을 풀 때면 남편 가방에서 늘 성경과 성무일도, 묵주가 나오는데, 그 점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여행지에서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졌다. 식사를 준비하려고 장도 함께 보러 간다는 자매님은 "저희가 이제 60을 바라보는데 둘이 여행 가서 뭐 그리 할 말이 있겠어요"하며 웃으셨다. 저녁식사 후 남편이 "기도하러 갑시다"하면 묵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가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노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은 그대로 천국이 아닐까?

 그렇게 묵주기도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면 차 한 잔 마시고,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성경을 함께 읽는다고 했다. 읽고 싶은 복음을 먼저 정한 뒤 그것을 번갈아가며 읽는 식으로 통독을 해서 애초 정한 부분은 완독을 하고 돌아온다고 했다. 이렇게 여행 중에 주님을 초대해 함께했으니 부활의 체험이며, 엠마우스의 재현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서 혹은 성격차이라는 이유로, 별거도 많고 이혼도 많은 우리 사회에 이만큼 영육이 건강한 가정을 만난 것이 반가웠다. 배우자에 대한 집착을 사랑이라 우기지 않고 서로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 또 배우자를 존재 그대로 바라보며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가정 복음화의 시작일 것이다.

 "남편과 아홉시에 함께 있게 되었는데, 열시에는 우리 둘이 동정(童貞)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우리는 4년 동안 남매와 같이 지냈습니다."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부부의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원의를, 신뢰와 우정으로 채워줌으로써 더 큰 사랑을 완성해 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는 칼릴 지브란의 예지를 닮고 싶은 날이었다. 그날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 참 따뜻했다.
                                                                                                      2008. 10. 19발행 [9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