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그 친구에게 밥 한끼 꼭 사줘야지!

namsarang 2010. 1. 5. 18:41

[사도직 현장에서]

 

그 친구에게 밥 한끼 꼭 사줘야지!


                                     조미형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오늘은 '가인'(佳人-부산교구 대학생 가톨릭학생회)을 만나는 날이다. 가인과 만남은 매주 수요일 수업이 끝나는 늦은 저녁이다.

 내가 학교 동아리방을 찾아가기도 하고, 친구들이 성지로 와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정기모임 외에 매 학기마다 캠퍼스미사를 올리거나 피정을 하기도 한다. 가인과 함께 한 3년 동안 나는 젊은 그들이 만나는 예수님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고 배웠다.

 "사실 저는 아버지 강요에 의해 성당을 다니게 됐어요. 그러다 고2가 되니, 공부를 핑계로 자연스레 성당에 가지 않았어요"로 시작된 그 친구의 나눔은 진솔했고 담백했다. 자신의 성적보다 높은 수준의 대학에 원서를 내고서는 주일미사를 언제 드렸는지도 모를 예수님께 열렬히 기도했다고 했다. 그리고 정작 지원했던 3곳 대학에 다 떨어지자 예수님께 심한 배신감이 느껴져 성당을 더 오랫동안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운 생각과 행동이었다"며 웃는 그 친구는 가인의 막내이다.

 "주님 포도밭의 일꾼일 수 있음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친구의 나눔에 감탄하고, 가톨릭학생회 임원으로, 또 청년성경공부 팀장으로 일하느라 정작 자신의 학과 공부나 필요한 레슨은 점심시간을 쪼개 대신한다는 친구의 나눔에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다. 친구는 너무 바빠서 하루 한 끼 밖에 못먹지만 주님과 함께라서 기쁘다고 한다. 그런 삶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 보이는 친구를 위해 이번 주중에는 밥 한끼 꼭 사줘야겠다.

 친구들은 "고3보다 빡빡한 수업과 하루에 3개씩 소화해야 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매주 2시간씩 모여앉아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생활을 나누는 동아리 활동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그럼에도 이곳에서 또 한주일의 영적 양식을 얻어갈 수 있다는 기대로 다시 찾아온다"는 또 다른 의미의 고백일 것이다.

 친구들 나눔을 듣자니 '공부'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을 청년 황사영이 떠오른다.

 순교자 황사영은 열여섯 홍안의 나이로 진사과에 급제해 인재를 목말라하던 정조대왕을 흡족케 했다. 정조는 그에게 문방사우(文房四友)를 하사하고, 장성하면 나라에서 크게 쓸 것을 약속하며 손을 잡았다. 어무(御撫)가 내린 것이다. 황사영은 평생 어무가 내린 손을 자주색 비단으로 감고 다녔고, 이를 보는 사람은 모두 경의를 표했다.이렇게 황사영은 사회적으로 말하는 소위 출세가도를 달리게 됐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그의 모든 지식과 재능을 교회를 위해서만 사용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겼던 사도 바오로와 교회를 위해서만 자신의 모든 재능을 사용했던 황사영처럼 자신을 내어 놓음에 관대한 우리였으면 좋겠다. 그 관대함에서 시작되는 우리의 사랑과 나눔이 삶에 지친 단 한 사람을 지키는 작은 등불이 됐으면 좋겠다.

2008. 10. 12발행 [9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