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개신교 신자들의 '거룩한 욕심'

namsarang 2010. 1. 2. 15:47

[사도직 현장에서]

 

개신교 신자들의 '거룩한 욕심'


                                       조미형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어느 본당에서 오셨어요?"

 비에 젖어 추워 보이는 순례자들에게 여쭸다. 이분들, 웃기만할 뿐 대답이 없으시다. 미안해서 그런가? 따뜻한 커피를 올리고 기념관 전시실 불을 켜며 다시 물었다.

 "어느 본당 식구들이세요?"

 그제야 "우리는 개신교 신자"라며 멋쩍게 웃는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모두 현직 교사들이며 학교는 다르지만, 역사가 좋아서 문화유적지를 연구하기 위해 모인 동아리란다. 지금은 정약종의 「주교요지」를 공부하는 중인데, 이것을 더 알고 싶어 오륜대순교자기념관을 찾아오게 됐으니 도와달라신다.

 일단 순교자 정약종을 공부하며 궁금했거나 의문스러웠던 점을 질문해보시라고 했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동안 담아두었던 의문들을 다 풀어놓으신다. 질문이라는 것은 선지식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최초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를, "나는 하늘을 향해 죽겠다"며 후손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를 남겨주신 순교자의 유작을 개신교 신자들을 통해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분들은 이미 초대교회의 성립과정과 전국적인 4대 박해의 순교자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 박해의 순교자도 알고 있었다. 종파를 초월한 진리 탐구 열정이 부러웠다. 아니 그들의 거룩한 욕심에 질투가 났다. 우리 신앙 선조들 역시 학문연구인 강학을 통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던가. 「주교요지」를 통해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다음엔 꼭 들어봐야겠다.

 사실 나는 개신교 신자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선교사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양 선교사인 신부님들은 지방 교우촌을 방문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상복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조선 법에 상복을 입은 상주에게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던 장점을 이용한 것입니다"라며 그건 권모술수니, 사람을 속인 것이니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개신교 신자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분들을 뵈면서 나의 편견을 바꿔야겠다는 반성이 됐다.

 오늘 못 다한 공부를 위해 다음에 만날 날짜를 수첩에 꼼꼼히 기록하고서야 돌아가는 선생님들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예수님 발치에 앉아 빵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졸라대던 이방인 여인의 야무진 지혜가 그들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2008. 09. 14발행 [9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