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당신들의 보는 눈과 듣는 귀는 행복합니다

namsarang 2009. 12. 31. 11:48

[사도직 현장에서]

 

당신들의 보는 눈과 듣는 귀는 행복합니다


                                                               정점순 수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났는데, 수돗물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고 당신이 응급실로 갈 때 작동하지 않을까봐 늘 노심초사하던 승강기도 작동이 잘 되고 세상 것은 무엇 하나 정지된 게 없는데, 나만 모든 것 앞에서 멈춰 섰나 봅니다."

 3년이 넘도록 남편을 잃은 아픔에 실의에 빠져 흐느끼던 ㅅ자매가 이제는 조금 일어섰나 보다. 오랜 세월을 동반해 왔지만 그와 아픔을 함께 나누기엔 우리 몫은 참 작고 힘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팀은 산업재해로 치료 중인 산재 환자들을 만나러 병원과 가정으로 여기저기 방문 상담을 다닌다. 그런데 치료 중인 이들을 찾아온 우리 팀이 그들에겐 퍽이나 이상한(?) 존재로 비춰지는가 보다. 분명히 교회에서 나온 이들인데 예수님 이름도 광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천주교 신자 한 분이 우리와 함께 재가진폐환자 가정 방문에 참여하고 난 뒤 "왜 기도하지 않고 나오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들을 기도하기 위해 만나러 가는가? 아니면, 그들을 모두 천주교 신자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찾아가는 것인가?

 만남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산재 환자들과 진폐환자들이다. 우리는 시혜를 베푸는 자가 될 수 없다. 산재사목팀이 만나는 이들 대부분은 믿지 않는 이들이다. 만남은 서로가 갖고 있는 공통의 관점에서 만나고 출발해야 한다.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들의 아픔과 걱정, 고민과 관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신들이 준비해온 기도문만 외고 나간다면 어떻게 참다운 만남이 이뤄질 수 있을까?

 산재환자들과 진폐환자들은 이 때문인지 우리 방문과 나눔에 곧 경계심을 풀고 형제적 만남을 하게 된다. 만나기 전과 만남에서 나눔이 이뤄지는 시간까지가 그들에게도 고민되는 시간일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개신교와 불교, 기타 종교들을 갖고 있지만 종교 때문에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적은 없다.

 그들을 방문하며 우리 팀은 "보는 눈의 행복, 듣는 귀의 행복을 누리는 복 받은 자"들이 된다.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현존은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가난하고 지친 이들, 무거운 멍에 때문에 가다가 넘어진 이들이 바로 그분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목격하는 기쁨을 오늘도 누리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산업재해자, 진폐환자들이 보다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행복이 주어지고 그들이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묻는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2008. 05. 25발행 [9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