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연금으로 산재치료비 갚는 환자

namsarang 2009. 12. 28. 21:08

[사도직 현장에서]

 

연금으로 산재치료비 갚는 환자


                                                             정점순 수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


    박○○님은 산재 치료를 종결하고는 전남의 한 시골집을 고쳐 벌써 몇 해째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산다. 2006년 4월께 노동계에서 활동하는 한 관계자와 함께 그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분은 그날 산과 들에서 직접 캐온 산나물과 봄나물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분이 선물한 나물은 적어도 내게는 단순히 나물이 아니라 절망을 이겨낸 희망의 나물이었다.

 이전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은 매주 목요일마다 서울에 있는 한 화상 전문 치료센터에 입원 중인 박○○님과 다른 산재환자들을 꾸준히 만나 방문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박○○님은 90%가 넘는 화상 사고로 생사를 넘나들며 보낸 3년의 세월로 건강은 물론 가족관계와 미래의 삶, 그리고 인간관계가 모두 단절돼 있었다. 남겨진 것이라고는 장애와 우울증, 치료비로 남겨진 빚 4500만 원뿐이었다. 치료비라도 받기 위해 소송을 했지만, 회사는 이미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한 나라의 의료비와 교육비는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교육비와 의료비의 본인 부담금은 각 가정이나 당사자가 떠안은 빚더미로 남는다. 박○○님처럼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항목은 의료비 형평상 산재보험에서도 혜택이 없다. 따라서 영세 업체나 부도로 폐쇄된 업체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이 부담하지 않는 비급여를 빚으로 떠안게 마련이다. 그래서 산업재해 환자들 안에도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라는 양극화 현상이 생긴다. 대기업과 괜찮은 기업주를 만나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평생 장애와 빚을 지고 살게 된다.

 중증 화상환자는 일생 동안 가렵고 따갑고 신경이 당겨 넘어지고 갈라지는 등 몸 상태가 자유롭지 않다. 통증과 장애만으로도 힘든 상태에서 치료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산재환자의 요양비는 족쇄와 같다. 산재환자의 치료비는 병원과 산재노동자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노동부가 풀어야 하는 문제다. 아니 보건복지부에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박○○님은 지난해 8월부터 산재연금에서 매달 100만 원씩 치료비를 갚고 있다. 적어도 2011년까지 갚아야 하는데…, 해답은 없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모처럼 박○○님과 통화를 했다. 시골에서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지만, 유일하게 동네 어르신들과는 친교를 맺고 있단다. 통화 내내 2년 전 나물이 아른거린다. 박○○님의 화상 흉터도 아른거린다. 연금으로 갚고 있는 산재치료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