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순 수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
오늘날 예수님의 학교생활에 성적표를 매긴다면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답하신 것으로 미뤄 수학 점수는 틀림없이 낙제일 터이다. 숫자에 어두운 나도 수학 점수가 좋지 않긴 마찬가지다. 요즘엔 손전화로 인해 전화번호 외울 일까지 없어져 숫자개념이 갈수록 둔해진다. 그래도 한 해에 한 번은 꼭 확인하는 숫자가 있다.
'190,147 22,406 33,242,276,000,000 416,211,380,000,000….' 나열된 숫자는 2007년 우리나라 산업재해 현황이다(출처 : 노동부). 첫 번째는 재해자 수, 두 번째는 사망자 수, 세 번째는 산재보상액, 네 번째는 경제적 손실액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었다'하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었다'하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었다'한다. 다친 이들을 제외하고, 산업재해로 날마다 7명씩 죽어가는 현실이 우리 작업 환경을 가늠케한다. 그래서 노동계는 해마다 4월 28일이면,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이들을 위한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기념행사를 갖는데 이날이 유래된데는 특별히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태국 케이더(Kader)에는 '바트 심슨' 인형을 만드는 장난감 회사가 있다. 바트 심슨은 미국의 유명 TV애니메이션인 '심슨 가족'의 주인공이다. 1993년 4월 10일, 이 회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188명(이 가운데 174명이 여성노동자)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한데 이같은 대형 참사가 빚어진 이유는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지 모른다는 이유로 회사측이 밖에서 공장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3년 뒤 1996년 4월 28일 미국 뉴욕의 유엔회의장 앞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Committee on Su-stainable Development)' 회의에 참석했던 각국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이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혔다. '4ㆍ28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고와 직업병으로 생명을 잃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아픔 앞에서 우리 산재사목팀도 수시로 무력감을 체험한다. 지난해 1월, 석공 일을 마치고 귀가해 쓰러진 ㅊ님은 자신이 앓는 병이 진폐증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만 수개월을 보내야했고, 그나마 법의 보호마저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지난 1월 세상을 떠났다. 만 50살도 안된 나이였다. 그분의 아내는 남아 있는 아이들과 생계 문제로 슬픔을 삭이지도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우리 산재사목팀은 이날을 단순히 타계한 이들을 위한 4ㆍ28이 아니라 '그 가족들과 이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보다 안전한 작업환경이 확보되고 생명의 존엄성을 담아내는 의미 있는 날로 기억'하고자 한다.
2008. 04. 27발행 [96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