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사람을 찾습니다

namsarang 2009. 12. 24. 14:41

[사도직 현장에서]

 

사람을 찾습니다


                                                              정점순 수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봐야 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샘이 있기 때문이야!" 생떼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만날 적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복음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이들에게 주목한다.

 메시아를 만나고자 산과 들을 지나고 강을 건너 왕궁이 아닌 초라한 집 마구간에서 태어난 한 갓난아기에게서 메시아를 알아보는 동방 박사들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주님을 알아본 우도, 그리고 백인대장은 외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주님을 알아 본 증인들이다.

 아들을 봉헌하러 성전에 들어서는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에게서 구세주를 알아보는 시메온과 안나는 생명이 다한 노인이다. 오늘날로 치면 일거리도 없고 생산력도 없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인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이들의 역할은 컸다.

 하지만 산업화는 어르신들의 자리를 없애버렸다. 구세주를 봤다는 걸 증언하는 시메온과 안나의 경륜, 그리고 영의 지혜는 단번에 쌓인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켜켜이 쌓여온 것이다. 두 노인은 사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얼마 전, ㅇ어르신(85세)께서 ㅎ어르신(70살)과 함께 성모병원(여의도) 산업의학과에 오셨다. 두 분은 서울의 한 노인정에 다니다가 만나셨는데 탄광에서 일을 하시던 분들이었다. 헌데 ㅎ어르신은 몸이 불편하신데도 진폐에 대해 전혀 몰라 안내를 부탁하고자 물어물어 병원에 오신 것이었다. 진폐증을 확인하려면 탄광에서 일한 경력 증빙서류가 필요한데, 33년 세월이 지나버린지라 동료들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았다. 건강상태나 외적인 모습도 초라한 그분은 동년배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이런 상황이지만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진폐환자들로서는 인감과 여러 서식을 갖추고 때론 지방까지 함께 가서 보증을 서야 하는 까닭에 도와주려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ㅎ어르신 가족들은 처음부터 아예 포기를 하시라고 했다니, 그만큼 까다로운 게 인우보증이다.

 그런데도 ㅇ어르신은 보잘것없는 ㅎ어르신에게서 한 인간을 봤다. ㅎ어르신을 둘러싼 조건이 사막처럼 막막하고 피폐해도 그 안에서 영혼의 보물을 봤던 것이다.

 ㅎ어르신을 위해 당신 시간과 돈을 내어놓으시는 ㅇ어르신, 벌써 한 달째 이 병원, 저 병원으로 함께 다니시며 함태광업소에서 1960년부터 75년까지 16년간 일한 ㅎ어르신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찾느라고 85살 노구를 이끌고 애쓰시는 ㅇ어르신을 통해 나는 오늘 시메온을 만나고 있다.

                                                                                                        2008. 04. 13발행 [9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