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희망을 만드는 산재환자의 보호자

namsarang 2009. 12. 25. 18:51

[사도직 현장에서]

 

희망을 만드는 산재환자의 보호자


                                                              정점순 수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진폐환자들을 만나러 다닌 지 거의 20년이 다 됐다. 오늘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연분홍빛 벚꽃이 마치 하느님 축복인양 바람에 나부낀다.

 4월의 봄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특히 여의도 벚꽃 길은 오가는 이들은 물론 병원에 입원 중인 환우들에게도 큰 기쁨을 준다. 이맘때면 오랜 세월 묵묵히 서서 봄날의 며칠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벚꽃나무들과 함께하고 싶어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

 봄꽃은 대부분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질 때쯤 잎사귀가 나온다. 새순이 돋으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시작해 마침내 온 나무를 연둣빛으로 뒤덮는 손길은 바로 나무 수액이다. 꽃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무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수인 셈이다.

 화사한 벚꽃 아래에서 수액 같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산재환자와 진폐환자들의 부인들이다. 화상과 감전, 절단과 추락과 같은 수많은 직업병으로 삶이 정지돼 버린 산재환자들은 전혀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

 이들을 동반하는 보호자들 삶 역시 얼마 동안 정지된다. 연약한 몸으로 아기를 대하듯 남편을 간병하며 우울증과 갖가지 질환에 시달린다. 그들은 몸이 아파도 마음 편히 쉴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부들을 가리켜 '살림한다'고 한다.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만이 살림일까? 그게 살림이라면 자동화된 기계가 더 많이 한다.

 여인들은 생명을 가꾸고 키우는 이들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또 다른 생명을 이어가도록 하는 '살림'이 바로 여인의 고유성이다.

 장애인이 된 남편, 직업병에 걸린 남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으로 평생을 침대에 의지해도, 통교도 되지 않고 삶을 더 이상 성장시킬 수 없어도,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사는 이들은 모든 것을 세상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살림'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산재사목팀이 만나는 보호자들은 나무 수액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가톨릭대 성모병원과 가정으로 입ㆍ퇴원을 거듭하며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하는 아무개님의 보호자는 오죽하면 '진폐환자가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는지' 몰카(?)를 찍어 관계 부처에 보내고 싶다고 할까?

 병원에 있어도, 집에 있어도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사는 이분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산재사목팀은 오늘도 이들을 통해 우리의 '참다운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