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이 가을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namsarang 2010. 1. 4. 17:29

[사도직 현장에서]

 

 이 가을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조미형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천주교 성지라는 입지와 바다가 있는 관광지 특성이 어우러진 오륜대 순교자기념관에는 늘 설레는 만남이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고, 사람과 하느님의 만남이 있다. 자신과의 진솔한 만남이 있고 옛 선열들과의 숙연한 만남도 있다. 굳이 내가 찾아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고1 때 친구를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쟤 성당에 다닌다며?"
 "어머,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 이단이잖아?"

 고1 때 내가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날 괴롭히는 세 명 중 두 명은 개신교 신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한 친구의 아버지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총을 들고 교련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진학을 막았을 정도의 맹신도였다.

 이렇게 사상적으로 무장된 친구들과 한판 승부를 하기 위해 조용히 결전의 날을 기다리던 어느날, 드디어 계획을 실행할 좋은 기회가 왔다. 교구설정 150주년을 준비하며 각 본당에서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모시고 철야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셋 중 '짱'이라고 생각해 둔 친구 한 명을 기도회에 초대했다. 내가 태어나 무엇을 위해 그리 열렬히 기도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지 싶다. 그 친구는 내친김에 예비신자 교리에도 참석해보라고 했더니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때 나를 괴롭히던 친구 세 명 중 둘은 나와 같은 수도자가 됐다. 그리고 그 중 한 수녀님을 약속도 없이 이곳에서 만났으니 그 기쁨이 어떠했겠는가? 학창시절의 그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북적대는 순례시간을 비껴 조용한 오후가 되면 두서넛 장애인들이 어김없이 야외 성모상 앞에 모여든다. 곁에서 들어도 뭐라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성모님께 열심히 자유기도를 올린다. 이어 마음을 다한 기도가 끝나면 저마다 성모님께 바칠 초에 불을 밝힌다. 이런 친구들에게 성모님은 어떤 미소로 말씀을 건네실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외지고 비탈진 성상(聖像)에도 잊지 않고 꽃을 봉헌하는 마음과, 시간을 내어 순교자 묘역의 풀을 뽑는 새싹 닮은 이들이 만나는 순교자는 또 어떤 분이실까?

 10월, 묵주기도 성월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는 누구라도 친구가 돼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길을 나서보자. 그렇게 맑고 투명해진 영혼의 목소리로 천상 어머니를 불러보자.

 사형장에서조차 "내가 아직 묵주신공이 끝나지 않았으니 기도를 다 마칠 때까지만 형을 미뤄달라"시던 하느님의 종 김광옥 안드레아처럼 오래오래. 죽는 순간까지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하례하나이다"라고 의탁하며 순교한 하느님의 종 이도기 바오로처럼 겸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