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기억이 안 납니다." "술을 좀 마셔 그렇지 사람은 정말 좋아." 우리나라는 비교적 관대한 음주문화 탓에 알코올 관련 질병 발생률이 높다. 알코올 소비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15살 이상 술 소비량이 세계 2위로, 위스키와 같은 독주 소비량은 OECD 전체 회원국 중 1위라고 한다.
술은 뇌세포에 치명적 손상을 입힌다. 술을 급히, 많이 마시면 간이 알코올을 충분히 분해할 수 없고, 알코올은 혈액 공급량이 많은 뇌에 손상을 주게 된다. 전두엽은 학습, 단기 기억, 이성, 계획, 문제 해결, 감정 조절 등과 같은 고차원적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이며, 두정엽은 공간시각적 과정과 집중력 조절 등을 담당하는 부위다. 만성적이고 과도한 음주는 이들 부위에 신경생물학적으로 비정상적 활동을 일으킨다. 평소 순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작은 자극에도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것은 알코올이 전두엽의 충동 조절 기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밤 필름이 끊겼다'는 사실은 무용담(!)이 아니라 알코올이 뇌에 손상을 주고 있으니 술 공급을 끊어 달라는 우리 몸의 간절한 호소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술은 풍요로움, 성대한 잔치를 나타낸다. 이사악은 아들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한다.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창세 27,28).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기적을 행하신다(요한 2,1-12).
지중해 연안에서 포도주는 가난한 이들도 즐겨 마시는 음료수와 같은 것이었다. 축복의 의미로도 쓰인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시편 23,5).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그러나 성경에서도 과도한 음주는 경계한다. "술을 폭음하는 자들과 고기를 폭식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마라"(잠언 23,20). 술에 취하는 것은 불충한 종의 전형적 모습이다(루카 12,45). 술 취한 자는 비틀거리고 토하면서 비틀거리고(이사 19,14) 미친 것 같은 징후를 보인다(예레 51,7). 또 술에 취하면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낸다(하바 2,15). 술에 취한 노아는 그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다(창세 9,20). 또한 술 취한 롯은 딸들과 근친상간을 맺게 된다(창세 19,30-38).
이처럼 술에 취하면 비윤리적 행동으로 연결되기 쉽다. 술 취해 있는 동안에 암살당한 왕도 있다(1열왕 16,9). 그래서 왕들에게 금주를 강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임금에게 어울리지 않고 독주를 탐하는 것은 군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잠언 31,4 ). 술은 무엇보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고통 받는 모든 이의 권리를 해치게 된다"(잠언 31,5). 사도 바오로는 술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티토 2,3).
적당한 음주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레드 와인은 암 예방과 심장질환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조건이 있다.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