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겨자씨는 성경이나 랍비 문헌에서 가장 작은 것을 가리킬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겨자라고 하면 음식점에서 나오는 톡 쏘는 매운맛 향신료를 상상한다. 겨자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재배식물 중에서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 중 하나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에 기록돼 있을 정도다.
성경시대에는 겨자를 기름과 약재로 사용했고, 중요한 향신료로 사용했다. 지금도 버섯에 중독 되거나 독이 있는 짐승에게 물렸을 때 겨자씨를 달여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겨자는 1년생 초본인데 중동지역에서는 3m 이상씩 자라 사람 키보다도 큰 것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들에서 자랐다고 하며, 또 흔하게 재배되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겨자씨 이미지를 통해 비유하셨다. 예수님은 실제로 겨자씨를 땅에 심는 것 중에 가장 작은 씨라고 묘사하셨다. 그런데 가장 작은 것의 상징으로 사용된 겨자씨가 실제로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를 가장 작은 것의 상징으로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갈릴래아 호수 근처와 북쪽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흔한 식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마르 4,31). 당시 이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은 대단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다윗 성왕의 위대한 왕조를 다시 건설할 정치적 인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는 철저하게 그분 능력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인간의 눈에는 신비로운 형태를 지닌다. 보이지 않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말씀도 처음에는 미약하게 보이지만 점차 엄청난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31-32).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아주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라서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정원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된다고 역설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누룩의 비유에서도 나타난다(마태 13,33). 이러한 말씀은 박해에 시달리던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도 큰 희망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신앙인의 믿음에 대해서도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예수님이 인간의 생각과 하느님의 잣대를 분명하게 언급한 대목이다. 비록 인간의 생각에는 작은 믿음이라 해도 믿음의 능력은 위대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작고 미소한 겨자씨는 희망과 인내의 상징이 된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그 열매가 맺는 일은 믿음 안에서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겨자씨의 상징은 빨리빨리를 외치고 눈에 당장 결과가 보여야 안심이 되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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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자씨를 접사해 찍은 사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