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바람은 기압 변화로 일어나는 공기 움직임이다. 바람을 가장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생물은 조류다. 새는 날개를 치며 날기도 하지만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바람의 힘으로 장시간 공중을 날 수 있다. 바람은 구름을 부르고 비를 가져오므로 사람들, 특히 농경민이나 범선으로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친 바람은 사람에게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처럼 바람은 인간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므로 옛부터 사람들은 바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종종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가운데는 하늘 신은 바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한다고 생각하는 부족이 있다. 바람을 죽은 사람 영혼 활동과 결부시키는 사회도 있다.
도시에서는 바람의 직접적 영향은 적지만 농촌ㆍ산촌ㆍ어촌 사람에게는 생명에도 관계되는 큰 영향을 준다. 특히 해안지대에서는 바람 방향과 세기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바람의 이름도 생활과 깊은 연관을 맺고 지어진 것이 많다. 사람들은 바람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고, 신의 왕래로 여기며, 특히 피해를 주는 바람을 두려워한다.
옛날 자연상태를 벗어나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은 자연현상이 생기는 본래 원인을 몰랐으므로 바람의 술렁거림과 폭풍의 포효를 인격화해서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을 대지가 쉬는 숨, 우주 활동으로 여겼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언가 보다 높은 힘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구약성경에서 심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하느님 현존과 관계가 있다. "커룹 위에 올라 날아가시고 바람 날개 타고 떠가셨네"(시편 18,11). 에제키엘이 경험한 하느님 오심은 북에서 불어오는 폭풍에 의해 예고된다.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에제 1,4).
욥이 고난을 당하는 중에 하느님 음성을 들을 때도 바람은 하느님 현존과 함께 나타난다.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욥 38,1). 또한 폭풍은 하늘의 벌과 위협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라, 주님의 폭풍이, 그 노여움이 터져 나온다. 회오리치는 폭풍이 사악한 자들의 머리 위로 휘몰아친다"(예레 23,19).
신약성경에서 바람은 하느님 성령과 연관된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 바람에 비유해 언급하신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7-8).
이처럼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바람과 연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든 창조설화를 상기시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오순절 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성령 강림을 체험했을 때도 바람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이에 바람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령의 싱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