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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학교에서 희망을 배웠네

namsarang 2010. 1. 12. 19:06

고통의 학교에서 희망을 배웠네

       ▲ 이해인(65) 수녀

암 투병 이해인 수녀, 병상에서 쓴 詩·일기 묶어 책 펴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입니다."

지난 2008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이해인(65) 수녀가 병상에서 틈틈이 쓴 시 100편과 최근 1년 반 동안 쓴 일기를 묶어 시·산문집 '희망은 깨어 있네'(마음산책)를 냈다. 수록된 시들은 암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을 진솔하게 드러내면서도 의연하게 삶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아플 때 아프다고

 신음도 하고

 슬프면 눈물도 많이

 흘리는 게 좋다고

 벗들이 나에게 말해주지만

 진정 소리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는 나의 아픔과 슬픔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지

 그들은 내게 딱 부러지게

 대답은 안 했지만

 침묵을 좋아하는 눈빛이기에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지

 끝내 참기로 했지.'

('병상일기 2')

지난해 타계한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큰 가르침을 되새기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와 화가 김점선씨에 대한 인간적 그리움도 토로했다.

'그리움으로 길게 이어지는

 추모의 물결이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기적을 보고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이 물결이

 서로를 챙겨주는 사랑의 축제로

 일상의 삶에서

 더 길게 이어지는 기쁨을 보게 하소서.'

('봉헌기도-김수환 추기경님을 보내며')

'장영희 김점선 이해인

 셋이 다 암에 걸린 건

 어쩌면 축복이라 말했던 점선

 

하늘나라에서도

나란히 한 반 하자더니

이제는 둘 다 떠나고

나만 남았네요.'

('김점선에게')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피겨여왕 김연아를 응원하는 시도 눈길을 끈다.

 

'네가 한번씩

 얼음 위에서

 높이 뛰어오를 적마다

 우리의 꿈도 뛰어올랐지

 온국민의 희망도 춤을 추었지

 때로는 얼음처럼 차갑게

 불꽃처럼 뜨겁게

 삶의 지혜를 갈고닦으면서

 늘 행복하라고

 우리 모두 기도한다

 

우리도 일상의 빙판을

가볍게 뛰어오르는

희망의 사람이 되자고

푸른 하늘을 본다, 연아야.'

('김연아에게')

산문에서는 투병 이후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대한 소회를 기록했다.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상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 반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며 옥상에서 산책을 하는 저녁식사 후의 행복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고통의 학교에서 수련을 받고 부르는 희망'이란 제목의 책 머리말을 통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최선을 다해 투병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심정으로 작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다짐했다. 이해인 수녀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머물면서 두 달에 한 번꼴로 상경해 검진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