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과 음악으로' 검은 대륙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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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수단 톤즈마을의 원주민들을 치료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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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자랑스러운의사상을 수상한 이태석 신부. |
수단 톤즈마을의 슈바이처이자 음악 교사 태양열 냉장고 만들어 백신 보관, 의술 펼쳐 지난해 말 대장암 판정받고 수단에 못 돌아가
"부끄럽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서 원주민들과 몇 년을 살았을 뿐인데…. 제 것도 아닌 상을 몰래 훔쳐가는 느낌에 죄책감마저 듭니다."
17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 8년 동안 아프리카 수단 톤즈마을의 유일한 의사였던 이태석(살레시오회) 신부가 대한의사협회가 마련한 한미자랑스런의사상 시상식 강단에 섰다. 그의 손엔 상패와 상금 5000만 원이 들렸다.
그는 40대 후반이지만 생기있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얼굴은 그을렸고, 볼살이 빠져 광대뼈가 드러난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도 다 빠졌다. 그는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 앞에서 조금 힘겨운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단 아이들에게 '쫄리'라고 불린다. 세례명 요한(존)에 성 이(리)를 합친 이름이다. 그는 수단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이 별처럼 아름답다고 하더니 그도 그만 아프리카 소년이 돼버렸다. 투병 중인 그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닮은 미소가 배어 나온다. 그는 지난해 말 귀국길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걷는 모습과 안색만 봐도 어떤 종류의 말라리아에 걸렸는지 판별할 수 있다는 그에게 왜 자신의 몸은 정작 돌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우스갯소리로 "난 거울이 없어서 못봤지…"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 신부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 대림동 수도원에는 가끔 인편으로 수단 아이들의 편지가 온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투병 중인 이 신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편지지에는 그가 사목했던 성당과 80여 개의 공소, 진료소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사랑이 담겨있다.
10남매 중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난 이 신부는 어려서부터 수도자가 꿈이었다. 형과 누나가 성직ㆍ수도자의 길로 가면서 어머니의 쓸쓸한 모습에 꿈을 접었다. 그러나 인제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다시 꿈을 꺼냈다. 늘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고민했던 그였다. 그는 1991년 짐을 싸 살레시오회에 입회했고 2001년 갓 사제품을 받은 후 다시 짐을 싸 수단으로 떠났다.
경비행기로 도착한 수단의 남부 톤즈마을은 섭씨 40도가 넘나드는 더위에 전기도 쓸 수 없었다. 말라리아와 홍역 등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지천이었다. 그는 헐벗고 굶주린 원주민들을 위해 벽돌을 쌓아 병원을 짓고 진료를 시작했다. 1주일에 한번 톤즈마을의 인근까지 이동진료를 나갔다. 의료 인력이 부족해 마을마다 의료요원을 선발해 의료교육도 펼쳤다.
재작년에 일어난 콜레라 사건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탈진한 환자들의 구토와 설사, 악취로 가득한 진료소에서 그는 링거액을 주사하면서 뛰어다녔다. 결국 손이 모자라 고등학생들을 불러다 혈관 주사 놓는 법을 가르쳤고, 그 덕에 많은 생명을 살린 일은 지금도 미소짓게 한다.
태양열을 이용한 냉장고를 만들어 백신을 보관한 일화는 유명하다. 예방 접종약 보관 냉장고를 가동하면서 홍역으로 목숨을 잃는 이는 사라졌다.
이뿐 아니다. 그는 학교가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폐허가 된 학교를 다시 세웠다. 교실에서 처음 수업을 한 날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쫄리 신부는 의사였지만 음악 교사이기도 했다. 전쟁과 가난으로 얼룩진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려 기타와 오르간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더 많은 악기를 들여왔고 4년 후엔 35명으로 구성된 브라스밴드부가 결성돼 광할한 대지에 합주곡이 울려 퍼졌다. 전쟁이 익숙한 아이들은 총과 칼을 녹여 트럼펫과 클라리넷을 만들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수단의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온 그에겐 계속 하느님과의 여정을 함께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는 "가진 게 없어도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게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면서 "그들에게 베푼 것보다 얻은게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저는 하느님이 바라는대로 했기 때문에 이 상은 하느님이 받는 상"이라고 했다.
그는 시상식 강단에서 선배ㆍ동료 의사들에게 이렇게 말을 맺었다.
"저는 진료하기 전 1~2분은 환자의 눈만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만남 이전에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진실된 순간입니다. 질병 치료를 위한 단순한 만남이 아닌 고귀한 영혼과 영혼의 만남으로 승화시키는 의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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