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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前 은혜 갚자" 빈곤의 땅에 꽃피우다

namsarang 2010. 1. 30. 09:31

[베푸는 나라 KOREA]

"60년 前 은혜 갚자" 빈곤의 땅에 꽃피우다

                                                         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박순찬 기자 ideachan@chosun.com

 

 

'한국戰 참전' 에티오피아 후손 위해 학교 지어준 KOICA<한국국제협력단>

빈민가 예카지역 초등학교… 학생 250명이 참전용사 후손…

"학교 지어준 한국 고마워요"

아프리카의 최빈국(最貧國)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의 예카지역. 1인당 국민총소득(GNI·2008년 기준)이 280달러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도 빈민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곳에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마을을 꾸리고 산다.

12일 오후 2시, 예카지역의 '히브레 피레 초등학교(Hibret Fire Primary School)' 운동장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별관 2층 도서관에서는 수학수업이 한창이었다. 수학교사 하승천(27·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씨가 칠판에 큰 삼각형을 그렸다. "메이크 어 트라이앵글! (Make a triangle!·삼각형을 만들어보세요!)" 하씨의 말이 떨어지자,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던 40여명의 에티오피아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책상 위의 노란색 자석 교보재에 손을 뻗었다.

삼각형을 만든 학생들이 웅성거리자, 하씨가 한국어로 "집중의 박수를"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학생들도 유창한 한국어로 "집중의 박수를, 집중"이라 외치더니 '짝짝' 박수를 쳤다. 하씨는 "학생들이 간단한 한국어는 알아 들을 만큼 한국을 친숙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교실 앞에는 태극기와 에티오피아 국기가 깃대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학생들의 교보재와 책상, 의자에도 태극무늬가 선명했다.

지난 12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참전용사촌에 자리잡은 히브레피레 초등학교 7학년(우리의 중1) 학생들이 태극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교보재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 학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2005년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후손을 위해 지은 학교다. / 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박순찬 기자

이 학교는 지난 2005년 정부의 대외무상협력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지어준 학교다. 가장 먼저 이 지역에 학교를 지은 것은, 60년 전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이 학교 전교생 1500여명 중 250여명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후손이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전투병 6037명을 파병한 나라다. 121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다쳤다.

한국에서 돌아온 참전용사들은 정부로부터 해외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참전용사촌을 형성했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마을은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위해 싸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참전용사들은 정부와 군 요직에서 모두 숙청당했다. 이후 마을에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생존해있는 950여명의 참전용사 중 150여명이 아직도 이 마을에 살고있다.

할아버지가 참전용사인 찌온 터거이(11)양은 "할아버지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 한국이 참 고맙다"고 말했다.

학업뿐만 아니라 건강도 돌본다. KOICA에서 파견된 국제협력의사 윤상철(32·안과전문의)씨는 "시력검사조차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지난 3년간 칠판을 보지 못했다는 학생도 있었다"며 "조만간 전교생 시력검사와 함께 안경보급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OICA는 현재 수도 인근에 초등학교 4곳을 더 짓고 있다.

13일 오전 가슴 먹먹한 모래바람을 마시며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을 향해 자동차로 네시간을 달렸다. 그늘 한 점 없이 타는 듯한 태양이 뒤따랐고, 노란색 물통을 목에 매단 당나귀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차가 닿은 곳은 오로미아주의 헤토사 지역. 포장된 도로에서 차를 오른쪽으로 꺾어 흙길로 접어들자 뿌연 모래바람이 일었다. 길 양 옆에 나무기둥에 흙 담장으로 지은 집들이 보였다. 차가 마을로 접어들자 집집마다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뛰어나와 차 뒤를 졸졸 따랐다. 모래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천진하게 웃는 아이들의 눈망울 주위에 파리떼가 들끓었다.

이곳은 KOICA가 지난해 초부터 가족계획 및 모자보건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곳이다.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족계획에 대한 교육을 하고, 본인이 원하는 경우 약물과 주사 등을 통해 무료로 중·장기 피임시술을 해준다. 헤토사 지역은 주민 6188명 중 5세 미만 아동(2467명) 비율이 40%에 달한다. 에티오피아의 인구는 8071만명(2008년 기준)으로 나이지리아(1억5132만명)와 이집트(8153만명)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KOICA 김명선(41·프로그램 매니저)씨는 "다산(多産)이 에티오피아 빈곤의 큰 원인 중 하나"라며 "집집마다 평균적으로 7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많은 경우는 12명까지도 낳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물이 부족해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무계획적으로 출산을 해 영아와 산모의 사망률이 높은 편"이라며 "현재 15%인 이 마을의 가족계획 실천율을 30%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991년 설립된 KOICA는 2008년까지 에티오피아에 총 2095만 달러(218억1966만원)를 지원했다. 지난 18년간 식수 개발사업과 초등학교 건립사업, 가족계획 및 모자보건 사업 등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실시해왔다. 60년 전 에티오피아에게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40여년 만에 다시 은혜를 갚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교하면 금액은 많지 않지만 한국 원조는 개도국에서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유일하게 원조를 받아 본 국가이기 때문에 저개발국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이 나라 말로 '새로운 꽃'이라는 뜻이다. '폐허의 땅'에서 맨주먹으로 일어난 한국인이 60년이 지난 지금 에티오피아에 새로운 꽃을 심고 있다.

"60년 전 은혜갚자" 한국전 참전 에티오피아 후손 위해 학교 지어준 KOICA(한국국제협력단) /박순찬 기자 ideac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