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에 새로 반도체 사업 뛰어들어…
그가 씨 뿌린 기업, GDP 22% 차지
오는 12일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이 우리를 강제 병합한 1910년에 태어난 그는 26세에 첫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87년 세상을 뜰 때까지 50여개의 기업을 새로 만들거나 인수해 경영했다.
그의 기업 활동은 한국의 산업화, 자본주의 성장사와 맥을 같이 했다. 청년 사업가로 정미소와 운수·무역·양조업을 운영하던 그는 6·25 전쟁의 와중에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먹는 것'(제일제당)에서부터 시작해 '입는 것'(제일모직)으로, 다시 중화학공업 분야와 금융, 전자산업으로 도전을 이어갔다.
기업인 이병철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신사업에 도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산업'이란 이야기를 듣는 반도체 사업은 1983년 그가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인 73세에 새로 뛰어든 사업이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호암의 이런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김명언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통상 40대 중반이면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에 만기가 도래하고 그 이후는 창의성을 가진 사람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에 머문다"며 "고희가 넘은 나이에 새 사업 도전에 나선 건 이병철 회장의 창의성 수명이 100세 이상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기업인이었다. 월간조선 1984년 1월호 신년 대담 기사에서 그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정말 재미가 나고 아주 적극적으로 열의를 쏟는다. 뭘 창조한다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아마 본능적으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산업의 본질을 단순 명쾌하게 꿰뚫어보았다. 그것을 토대로 신사업 도전에 나섰다. 그는 "석탄 1t은 40달러, 철 1t은 340달러, 알루미늄 1t은 3400달러, TV는 중량으로 계산하면 1t에 2만1300달러, 반도체는 1t에 85억달러, 소프트웨어 1t은 426억달러, 정보는 1t당 852억달러. 뭘 해야 될 건지 분명하게 안 나오느냐 이거지"라고 단언했다. 시대와 산업의 흐름을 꿰뚫어본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
1938년 삼성상회를 모태로 출발한 삼성그룹은 그가 세상을 뜬 1987년에는 37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그것이 2세들로 이어지며 이제는 삼성·신세계·CJ·한솔 등 4개 그룹으로 분화·발전했다. 4개 그룹은 총 139개 기업에 전체 임직원 수가 26만6000명. 직원 1명에 4인 가족이 딸려 있다 계산하면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그가 창업함으로써 시작되고 파생된 기업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납품·협력업체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이 4개 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226조200억(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22%를 차지한다. 2008년 삼성그룹의 수출액은 700억달러로 한국 전체 수출의 18.9%를 차지했다. 또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00조, 영업이익 10조를 달성하며 전 세계 1위 전자업체로 성장했다. 그가 씨앗을 뿌리고 성장시킨 나무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거목으로 자란 것이다.
이병철 회장 어록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事業報國)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1976년 11월 전경련 회보)
▲기업가 정신이란 금전욕을 뛰어넘는 창조적 본능과 사회적 책임감이 잘 화합돼 우러나오는 것이다.(1980년 2월 2일 간담회)
▲기업은 사람이다. 나는 내 일생을 통해서 80%는 인재를 모으고 기르고 육성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다.(1980년 7월 3일 전경련 강연)
▲사장학은 인간학이다. 사장이 인간학의 능수(能手)일 경우 그 기업의 장래는 보장될 것이다.(1982년 10월 ‘한국인’지 기고문)
▲삼성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산업은 저절로 잘될 수 있다.(1983년 12월 5일 비서실회의)
▲삼성이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반도체산업을 성공시켜야만 한국의 첨단산업을 꽃피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1984년 5월 17일 기흥공장 준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