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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워 사랑을 나누신 님

namsarang 2010. 2. 13. 23:13

[ESSAY]

나를 비워 사랑을 나누신 님

  • 한홍순·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 한홍순·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IMF 캉드쉬 총재가 한국에 왔을때
짧은 일정 중에도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했다.
김 추기경은 우리 기업들을 위해 IMF의 이자율을
낮춰 달라는 편지를 캉드쉬 총재에게 보내도록 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善終) 1주기를 맞으며 추기경님에 대한 추억이 더욱 생생히 떠오른다. 필자가 김 추기경님을 처음 만난 것은 42년 전인 1968년 10월 유학 생활을 하던 로마에서였다. 그때 추기경님은 아직 추기경이 되기 전이셨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되신 지 얼마 안 되어 한국 천주교회 24위 순교 복자 시복식(諡福式)에 참가할 한국 순례단을 이끌고 로마에 오셨다. 시복식을 마치고 한국 순례단이 교황 바오로 6세를 알현했을 때 교황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각별히 대하시는 것을 보고 젊은 유학생으로서 마음 뿌듯함을 느꼈다. 김 추기경님이 더욱 자랑스러웠던 것은 그 뒤 1년이 지나 추기경으로 서임되셨을 때였다. 당시 김 추기경님은 세계 가톨릭 교회의 최연소 추기경이었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 유학하던 시절의 은사인 요제프 회프너 추기경과 함께 추기경으로 서임되어 세계 언론의 화제가 되었다.

김 추기경님이 독일 유학 시절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있어 국제적 권위자였던 회프너 추기경 문하에서 천착한 가톨릭 사회관은 이후 교회와 사회를 위해 펼친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김 추기경님이 우리 사회가 더욱 인간다운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진력하신 것은 바로 가톨릭 교회의 사회 원리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존중받고 모든 사람이 함께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돌이켜 보면 김 추기경님은 주교가 되면서 택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좌우명처럼,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온 국민을 사랑하는 삶을 몸소 살다 간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김 추기경님의 사랑은 사후에 더욱 커다란 열매를 맺고 있다. 김 추기경님의 사후 각막 기증이 있고 난 뒤 지난 한 해 동안 늘어난 사후 장기 기증 희망자의 수가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한 알의 밀 씨가 땅에 떨어져 썩어야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라의 품격이 고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국민의 사랑 실천은 바로 그 나라 문화의 수준을 가늠케 해주는 척도다. "서로 사랑하자"는 김 추기경님의 유언은 결국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을 들어올리는 열쇠를 남겨 주신 셈이다. 얼마 전 선진국들이 모여 국민소득의 0.7%를 가난한 나라에 제공하기로 했다는데 올해 G20 회의를 유치한 우리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제공하는 원조는 얼마나 될까.

일러스트=유재일 기자 jae0903@chosun.com
필자는 김 추기경님과 함께 가톨릭 교회 차원의 최고위급 회의에 참석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각국의 고위 성직자들이 김 추기경님을 찾아와 먼저 인사드리고 기념촬영을 청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김 추기경님 덕분에 우리나라의 국격을 느껴 보았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를 겪으며 IMF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평소 교분이 있던 IMF의 캉드쉬 총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경제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때 캉드쉬 총재는 짧은 일정 중에도 김 추기경을 최우선으로 예방했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김 추기경께서는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생각해서 IMF의 높은 이자율 정책을 재고해 달라고 캉드쉬 총재에게 보낼 서신을 쓰라는 말씀을 필자에게 하셨다.

남의 생명을 파괴하여 자신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반(反)생명적 이기주의, 그것을 상업화하여 국익을 신장하겠다는 비(非)윤리적 물질 만능주의가 횡행하는 세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작도 서슴지 않는 비양심적 행태도 한둘이 아니다. 몇 해 전 그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 추기경님은 언론과 인터뷰하다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겨레 사랑 실천이 부족해서 생긴 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한평생 우리 겨레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길'로 이끄는 일에 헌신한 분이지만 그는 늘 스스로를 부족하게 여겼던 분이셨다.

김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하느님은 앞에서는 안 보이지만 뒤에서는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김 추기경님은 하느님이 우리 겨레에게 준비하여 주신 선물이라는 점을 선종 후에 모두가 확신하게 되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 겨레와 나라를 보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의 사후 장기기증 희망자가 그전 20년을 다 합친 것에 버금가도록 놀랍게 늘어난 것만 보아도 김 추기경님은 자신을 비움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문화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준 증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김 추기경님 덕분에 우리 자신에게서 참된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