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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얼음 바다로 나아갔다

namsarang 2010. 2. 23. 21:13

[특별기고]

그래도 우리는 얼음 바다로 나아갔다

  • 남상헌·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실장

 

     ▲ 남상헌·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실장

쇄빙선 아라온은 지난달 12일 남극으로 달려갔다
첨단 시스템으로 방향과 속도를 유지하는 아라온에
러시아 전문가도 혀를 내두른다…
"쇄빙실험 실패" 일부 언론보도에 정신을 차렸다.
1월 29일 오전 9시 아라온이 마침내
얼음을 깨뜨리며 서서히 나아갔다 "성공이다!"
이제 우리는 북극으로 간다.

"오! 예! 그러면 그렇지. 이제는 됐다!"

2010년 1월 29일 서(西) 남극 해역에서 24시간의 준비를 거쳐 실시된 쇄빙 능력시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마음속으로 졸이다 혼자 내뱉은 자축의 말이다. 그러나 이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과정은 말과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난 1월 12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출항한 쇄빙연구선 아라온은 10일간 홀로 파도를 헤치며 남극으로 남극으로 달려왔다. 당초 만나기로 했던 러시아 쇄빙선 AF(Akadenic Fedoroc)가 심한 남극 바람에 묶여 지연되었다. 조우 장소와 시간을 수차례 변경한 끝에 22일부터 합류해 한 사람씩 교체 승선하고, 함께 첫 번째 목적지인 케이프벅스(Cape Burks) 인근에 23일 늦게 도착하였다. 대한민국 제2 남극기지 후보지 중 한 곳이다.

아라온으로 옮겨 탄 러시아 쇄빙선 2등선장 이고르는 아라온의 운항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 자신들의 배가 꿈도 못 꾸는 기능을 아라온호가 갖고 때문이다. DP(Dynamic Positioning) 시스템을 이용하여 케이프벅스 지역으로 조심스레 접근하여, 거리 700m 언저리까지 다가가는 아라온호. 다음날에도 주변에 넘치는 해빙으로 인해 멀리 달아난 러시아 쇄빙선과는 대조적으로, 아라온호가 DP 기능을 활용하여 해빙에 코를 대고 정박한 모습에 그는 그저 부러워할 뿐이었다.

DP 기능은 어느 쇄빙선도 아직 갖추지 못한 아라온호만의 자랑스러운 기능이다. 어떠한 바람·해류·조류에서도 위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하여 입력된 위치· 방향과 속도를 유지하는 기능이다. 그 등급도 DP-2급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선교(船橋·선장이 항해를 지휘하는 곳)에 이고르와 함께 있던 선장과 나는 물론이고 옆자리에 있는 항해사 등 너도나도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25일 저녁 무렵, 아라온에 있는 2대의 헬기가 남극기지 정밀조사팀을 태우고 사용할 장비, 물품을 실은 채 케이프벅스로 날아갔다. 이제 마침내 아라온의 진짜 임무를 수행할 시간. 우리는 쇄빙 시험을 위해 평탄 빙(氷)을 찾아나섰다. 남반구의 늦은 하절기라 조각난 얼음은 널려 있지만, 넓고 평탄한 해빙(海氷)은 눈에 띄지 않는다. 수석연구원인 김동엽 박사, 아이스파일롯(Ice Pilot·얼음 바다 안전 운항 지휘책임자)으로 참여한 유리(러시아), 쇄빙시험 전문가로 참여한 니나(러시아), 건조 조선사측의 임태완 과장과 협의 끝에, 먼저 정찰 헬기를 띄워 수색키로 하였다.

한 시간 뒤 돌아온 유리는 3개 지점을 추천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부터 시도하기로 하고, 아라온을 이동시켜 얼음에 부딪히자 거대한 평탄 빙이 쫙 갈라져 나갔다. 아라온의 쇄빙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전체 해빙은 그대로 있고, 아라온이 깨고 나아간 궤적이 뒤로 선명히 남아야 하는데 이렇게 얼음 전체가 깨져나가니 이상했다. 결국 쇄빙 능력을 시험하기에는 너무 약한 해빙이었다.

두 번째 평탄빙은 그리 녹녹지 않아 보였다. 26일 오후에 해빙의 상태 점검을 마친 후 아라온을 얼음에 부딪혔다. 그러나 얼음과 접촉하자마자 아라온이 멈춰섰다. 어찌된 일인가? 러시아 전문가는 얼음의 두께는 물론 위에 쌓인 눈이 너무 두껍다고 했다.

선교에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얼음은 생각 이상으로 두꺼웠고, 쌓인 눈의 저항력도 매우 컸다. 섣부른 시도를 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왔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사전에 확인하고 시험해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