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한민국 제1호

49년 송악산 공격, 육탄10용사 고지탈환

namsarang 2010. 1. 31. 20:17

[대한민국 제1호]

49년 송악산 공격, 육탄10용사 고지탈환

북한 도발

1949년 5월 3일 새벽 개성 송악산 일대. 38도선 남측 292고지에 진지를 구축하던 아군의 진지가 적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북한군 3개 중대가 송악산 능선을 타고 침투, 불법 공격을 가해왔다. 38도선 일대에서 벌어진 최초의 '공식적인' 북한 도발이었다. 292고지·유엔고지·비둘기고지 등을 빼앗긴 아군은 다음날 새벽 반격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때 등장한 영웅들이 '육탄10용사'. 81㎜ 박격포탄과 수류탄을 안고 적 토치카의 기관총 진지에 육탄으로 돌격, 고지 탈환의 결정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이 '송악산 전투'에서 육탄10용사를 포함, 국군 39명이 사망했다.

북한은 1947년 7월 38경비대를 편성, 소련군을 대체했다. 이후 3개 여단 규모로 확대 편성된 후 1949년 5월 초부터 38도선상에서 무력 도발을 일삼았다. 그해 1월에야 미군과 경찰에서 38도선 경계임무를 넘겨 받은 국군은 힘겨운 방어전을 치러야 했다. 북한군은 개성과 웅진, 포천, 춘천, 강릉 지구에서 중대~연대 규모의 도발을 일삼았다.

종전 후 군사분계선을 침범한 첫 사례는 1953년 11월 16일 발생했다. 북한 위관급 장교 한명이 자동권총을 지닌 채 당시 유엔사 인도군이 맡고 있던 포로관리부대에 침투하다 체포됐다. 북한은 1954년 7월 7일 한강 하구 비무장지대에서 접경 지역을 순찰하던 아군을 향해 처음으로 총격을 가했다. 아군 피해가 처음 발생한 것은 1961년 8월 25일.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 전투정찰대가 우리 군 초소를 습격, 1명 사망·4명 부상이라는 타격을 입히고 달아났다.

1976년 '8·18판문점도끼만행사건'(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촬영)은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전쟁 발발 위기로 몰아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의 도끼만행에 목숨을 잃었다. 그해 9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남북의 분할경비로 전환됐다. 유엔군사령부 집계에 따르면 1953년 7월 27일 이후 1994년 4월 말까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은 42만5271건에 달했다. 이후 통계는 작성되지 않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1973년 들어 북한 도발의 무대가 됐다. 북한 전함들은 그해 10~11월 총 44회에 걸쳐 서해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 이른바 '서해사태'를 일으켰다. 남북 전함이 직접 무력 대결을 한 것은 1999년 6월 발생한 제1연평해전이다. 북한은 선제 공격을 했지만 최소 30여명 이상 사망, 70여명 부상이라는 참패를 겪었다. 3년 후 북한 해군은 제2연평해전을 일으켰다. 서해 NLL상의 북한 도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7일 북한은 서해 NLL 인근을 향해 처음으로 수백발의 포격을 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