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8001은 텔레비전 수상기에 전동 타자기가 붙어 있는 형태로, CPU 속도는 1㎒였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110만원짜리 일반 PC의 CPU 속도(약 2.5㎓)와 비교하면 2500분의 1 수준인 셈이다. 가격은 1000만원. 당시 대기업 대졸 초임이 25만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정용으로 쓰기엔 값이 너무 비쌌다. 때문에 이 PC는 주로 기업의 회계관리용으로 사용됐으며, 일부가 캐나다로 수출되기도 했지만, 대량 생산·판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정에 보급되며 상용화한 PC는 삼보가 1982년 개발한 두 번째 PC '트라이젬20'이었다. 가격은 42만9000원으로 여전히 비쌌지만 1982~1983년 6000대가 팔렸고, 이 가운데 개인이 구입한 수가 1000대였다. 트라이젬20의 성공은 금성사(현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대기업의 PC시장 진출을 불러왔다.
정부가 1983·1989년 두 차례에 걸쳐 학교에 전산실을 만들고 PC를 보급한 '교육용 PC 보급 계획'으로 PC는 개별 가정으로 확산하기 시작했고, 이후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PC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지난해 1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조사에 따르면, 국내 PC 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60대, 초고속 인터넷망은 전체 가구의 92%에 깔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제1호]
PC_81년 삼보엔지니어링이 SE-8001 개발
국내에서 공식 업무에 사용된 최초의 컴퓨터는 1967년 경제기획원 통계국이 인구조사 분석을 위해 미국 IBM에서 수입한 'IBM 1401'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생산성본부도 일본 후지쓰의 '파콤222'를 도입했다. 이후 정부기관과 기업을 중심으로 업무용 컴퓨터가 잇달아 도입되면서 국내 컴퓨터의 역사는 시작됐다.
사실 이에 앞서 국내에서도 1962년 8월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 이만영 박사가 청계천을 돌면서 구한 부품을 모아 소형 전자계산기(computer)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항공기·유도탄 등 관련 산업이 없던 상황에서 정부도 고성능 컴퓨터 개발을 지원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 박사의 컴퓨터는 상용화하지 못한 채 잊혀졌다.
그리고 1980년 7월 2일, 이용태씨를 비롯한 7명의 젊은이가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에 모여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보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설립 6개월 만인 1981년 1월 SE-8001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품화된 개인용컴퓨터(PC)이다. PC(Personal Computer)는 IBM이 발표한 'IBM PC'라는 고유상표명에서 비롯된 단어로, 하나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여러 개의 단말기가 공유하는 형태의 이전 컴퓨터와 비교해, 하나의 CPU를 한 개의 단말기로 사용하는 컴퓨터를 뜻한다.
'대한민국 > 대한민국 제1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8년 런던 올림픽서 金晟集 역도 동메달 (0) | 2010.02.20 |
---|---|
故 이형근 대장 '10001'로 군번 1번 (0) | 2010.02.18 |
1897년 '소(牛)보험'… 100여일 만에 폐지 (0) | 2010.02.11 |
남극 탐사-63년 이병돈 박사 식량난 해법찾아 첫 탐사 (0) | 2010.02.09 |
'시발契'까지 만들게 했던 手製 시발 자동차 (0) | 2010.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