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6.25전쟁60주년

戰時 교과서, 전지 반 장을 32쪽 책 한권으로

namsarang 2010. 3. 13. 12:39

[나와 6·25]

                                         특별취재팀

                                                                                                 장일현 기자 ihjang@chosun.com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양모듬 기자 modyssey@chosun.com

                                                                                                 양승식 기자 yangsshik@chosun.com

 

戰時 교과서, 전지 반 장을 32쪽 책 한권으로

 

⑤처음 공개된 당시 교과서 12종
김일등병 부대가 중공군 잡는 과정 그리고, 미국·덜끼예(터키)… 군대 보낸 나라들 소개

 

전쟁 당시 문교부는 초등학교용 9종, 중학교용 3종 등 총 12종의 전시 교과서를 발행했다. 초등학교용은 '전시생활1(1·2학년용)' '전시생활2(3·4학년용)' '전시생활3(5·6학년용)' 등 3단계로 나누었고, 단계마다 각각 3종의 교과서가 제작됐다. 1·2학년용으로 '비행기' '탕크' '군함' 등 3종, 3·4학년용 '싸우는 우리나라'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씩씩한 우리겨레' 등 3종, 5·6학년용 '우리나라와 국제연합' '국군과 유엔군은 어떻게 싸워왔나' '우리도 싸운다' 등 3종이다. 중학교 교과서는 '침략자는 누구냐?' '자유의 투쟁' '겨레를 구원하는 정신' 등 3종으로 '전시독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각 교과서 뒷면에는 '피란 학생에게 거저 줌'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뒷면에는 '이 책은 전시판이므로 제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교사나 부형이 다음과 같이 제본하여 학생에게 주기 바란다. 바늘에 실을 꿰어 접은 데를 밖에서 안으로 잡아맨다'며 제본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놓기도 했다.

이들 전시(戰時) 교과서들의 크기는 모두 4·6판(127×188㎜) 규격이다. 모두 겉표지를 합해 32쪽 분량이다. 전쟁통에 용지난이 극심해 전지 반 장으로 책 한권을 만들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맞췄기 때문이다. 전지 반 장을 네번 접어서 자르면 4·6 규격 용지 16장(32쪽)이 나온다.


어떤 내용이 담겼나

"탕크가 갑니다. 오랑캐 쳐부수러 탕크가 갑니다. 기관총을 쏘는 국군도 조금씩 앞으로 쳐나아갑니다." (초등학교 1·2학년용 '탕크')

"군함 위에서 비행기가 떠오릅니다. 공산군을 쳐부수러 북쪽 하늘로 기운차게 날아갑니다. '만세! 만세!' 영이와 철수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용 '군함')

이번에 공개된 초등학교 전시 교과서들은 주로 소설 형식이다. 철수와 영이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해군의 군함을 소개하고('군함'), 서울·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명길이네 식구들의 피란 여정을 통해 당시 피란민들의 실상을 보여준다('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특히 1·2학년용 '탕크' '군함' '비행기'는 육·해·공군의 무기를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국군의 우월성을 알리고 반공 사상을 심어주고자 했다. 중간중간에 탱크와 군함, 비행기 그림을 큼직하게 그려 넣었다. '씩씩한 우리 겨레'(3·4학년용)는 김 일등병 부대가 514고지를 넘어 중공 오랑캐를 무찌르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렸다. '국군과 유엔군은 어떻게 싸워왔나?'(5·6학년용)는 전쟁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군대는 어째서 후퇴하며 싸우게 되었던가'를 시작으로 뜻밖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승리의 진군→한발짝 앞에 놓인 조국의 통일→새로운 침략자 중공군이 몰려오다 순으로 전황을 상세히 서술했다.

국제연합에 대한 소개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와 국제연합'(5·6학년용)에는 '우리를 도와주는 나라들'이라는 제목으로 군대를 보낸 나라들을 각국의 지도, 국기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미국: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가장 많이 힘써준 나라' '덜끼예(터키): 애국 지도자의 힘으로 기울었던 국세가 다시 일어난 나라. 좋은 담배가 난다.' '네델란드(네덜란드): 바다보다도 낮은 땅이 있는 나라. 국민이 대단히 부지런하다.'….

중학교용 교과서들은 좀 더 심도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흉물 김일성이가 초상집 개와 같이 자주 소련을 드나들다가 지령을 받아 6월 25일 고요한 강산을 포성으로 뒤흔들었다"고 썼고('침략자는 누구냐?'), '6·25전쟁은 단순히 국군과 공산군과의 전쟁이 아니라 중공과 소련 세력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자유의 투쟁'). 중학교용 교과서 각 권 뒷면에는 노산 이은상의 시 '낙동강'과 '조국에 바치는 노래'를 실어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전시체제의 교육

6·25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1951년 1·4 후퇴 때까지 남한의 교육 과정은 거의 전폐 상태였다. 모든 학교 수업이 중단되고, 정부 또한 피란 수도 부산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1951년 2월 25일 문교부(장관 백낙준)는 '전시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을 제정·공포해 피란 학생들이 피란지에 개설된 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했다.

'한국의 교과서 변천사' 저자 이종국 혜천대 교수는 "전시 교과서들은 전시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임시 교재로 만들어져 국어나 사회시간에 사용됐다"며 "학생들에게 전시 상황과 대처 요령을 알리고 반공 의식을 심어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란 중에도 정규 교과서가 존재하긴 했지만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는 불가능했다"며 "1951년 3월 발행된 전시 교과서들은 정규 교과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전시하의 교육 공백을 메우는 데 결정적인 학습 교재로 활용됐다"고 덧붙였다.

전갑주씨는 "전시 교과서는 수업 교재뿐만 아니라 고아원, 피란민 수용소 등에도 보급돼 많은 국민들에게 교육용으로 사용된 것 같다"며 "특히 중학교 교과서에는 '중학생 및 성인 소용'이라고 써 있어 어른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고 말했다.
 
 

"전국 샅샅이 뒤지며 전시 교과서 한권 한권씩 모아"

11종 수집한 전갑주 한국교과서 대표

11일 본지에 전시 교과서 11종을 공개한 전갑주(51) 한국교과서 대표는 "조선일보가 연재 중인 '나와 6·25' 기획시리즈를 읽고 전쟁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라고 했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세대인데 전시 교과서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유가 있나.

"6·25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를 통해서 늘 전쟁의 참상을 들었다. 전쟁 당시 중학생이었던 어머니는 전쟁으로 학교가 폐쇄되는 바람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늘 못 배운 게 한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즘도 내가 수집한 전시 교과서를 보실 때마다 '그때 나도 이 책들을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안타까워하신다."

―전시 교과서는 어떻게 모았나.

"15년 전 청계천 헌책방에서 전시 교과서 10권을 발견했을 때는 가슴이 뛰어 진정이 안 됐다. 기록으로만 접하던 '탕크' '비행기' '우리는 싸운다' 등을 한꺼번에 찾는 순간이었다. 그 뒤부터 전국 헌책방을 샅샅이 뒤지면서 한 권씩 모으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찾은 것이 3년 전 찾은 '국군과 유엔군은 어떻게 싸워왔나?'이다. 경매에 나온 것을 200만원에 구입했다."

―다른 책들도 수집하고 있나.

"20년 동안 국정교과서에서 근무하면서 교과서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교과서야말로 우리 교육 현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물인데도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박물관이 없어서 답답했다. 월급을 타면 절반은 옛 교과서를 구입하는 데 썼다. 하나씩 모으다 보니 조선시대, 근대 교육자료까지 손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교육자료 전체를 시대별로 모아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전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을 비롯해 시대별 교과서 3만여권을 수집·보관하고 있다. 10년 안에 한국 교육 역사 체험학습 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라고 했다.  

 

 

고아였던 내가 대사관서 일한 비결은 피란시절 천막학교에서 배운 글 덕분

  • 문창수(72세·서울시 구로구)

 

내가 태어난 지 한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곧바로 재가(再嫁)했다. 12살 때 전쟁이 나자 할머니와 고향 원산을 떠났다가 할머니마저 중공군의 총탄에 잃었다. 고아가 된 나는 사람들을 따라 흥남 부두에서 미(美) 군함(LST선)을 타고 남으로 내려왔다.

이곳저곳을 떠돌다 1951년 초 경남 거제도에 있던 국립각심학원이라는 고아원 겸 학교에 정착했다. 자갈밭 위에 나무로 벽면을 만들고 천막을 씌운 가건물에서 전쟁고아 또는 정신지체아 60~70명과 함께 먹고 자고 공부를 했다.

바닷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가운데 한 해 동안 국민학교 전 과정을 배웠다. 교과서는 숫자가 모자라 셋이서 한 권을 봤다. 표지 앞뒤로 커다란 전차가 그려지고 북한 괴뢰군을 물리치자는 내용이었다. 촛불 아래서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이름도 쓸 줄 몰랐던 내가 일기를 쓸 수 있게 됐다.

이듬해 부산의 해피마운틴고아원으로 옮겼을 때는 서울의 청운중학교가 설치한 임시 천막학교에 진학했다. 교과서 표지엔 군함이 그려졌고, 북진(北進) 통일의 염원이 담겼다. 또 새로 배운 영어도 재미있었다.

1953년에 서울에 올라와서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하루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연히 영국인을 만났다. 그에게 "헬로, 아임 오판(I'm an orphan)"이라며 조금 배운 영어를 써먹었다. 그게 인연이 돼 주한 영국대사관 11년, 주한 말레이시아대사관 30년 등 외국 대사관에서 41년간 일했다. 중학교 졸업장도 없는 고아가 대사관 직원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비바람 치던 천막학교에서 2년 남짓 공부했던 덕분이다. 그때 전차와 군함이 그려진 교과서가 눈앞에 선하다.

[인사이드 조선닷컴]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한 해